이재현 건축사
이재현 건축사(사진=이재현 건축사)

2022년 말 챗GPT 발표 직후, IT업계에 종사하는 친구를 통해 초기부터 써볼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에는 ‘심심이’ 업그레이드 버전인가 싶을 정도의 성능을 가져 당황스러운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챗GPT가 미국의 로스쿨 시험과 의사 시험을 합격했다는 뉴스가 화제가 되었고 콜롬비아의 한 판사는 판결문 작성에 챗GPT를 활용했다고 고백해 논란이 되면서, 이게 내가 써본 그것이 맞는 건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됐다.

이는 언어 기반의 대화형 AI의 특성을 잘못 파악한 나의 잘못이 컸는데 이후 챗GPT 활용영상이나 응용법, 각계 전문가들의 인터뷰 영상들을 보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상 전문영역에서의 활용능력까지 이미 검증되었다고 여겨졌을 뿐 아니라, 그동안의 어설픈 자동 설계프로그램이 아니라 조만간 진짜가 나타나 건축설계 판도가 뒤집어지며 건축사라는 직업 또한 AI로 대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직업 상위권에는 항상 미술가, 음악가처럼 예술 분야의 직업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분석이나 계산, 그로인한 예측 능력은 AI가 뛰어나다는걸 인정하면서도 창의성과 상상력, 감수성 등이 AI의 약점이라 생각하며 인간을 따라올 수 없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AI에게 가장 늦게까지 정복되지 않으리라 여겨졌던 창작의 영역에서 AI가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두며 믿기 힘든 결과를 낳고 있다.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모방하며 학습한 AI는 실사에 가까운 이미지들을 키워드 몇 개와 클릭 몇 번으로 생성해 내고 있으며, 원하는 화풍이나 작풍을 입력하기만 해도 원작자와 구분해 내지 못할 정도의 품질의 작품을 보여준다.

이 기술은 영상에도 적용되어 사람의 얼굴이나 대상을 바꿔주던 ‘deep fake’ 영상은 이젠 장난수준이 되었고, 아예 새로운 영상을 창조하기 시작했다. 음악 생성 AI로 작곡한 음원은 저작권에 대한 논란으로 입법화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물론 도면분석이나 작성능력이 없는 챗GPT로는 건축업역에서 활용도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겠지만, GPT-4가 이미지 해석 능력까지 갖추게 되면서는 기술적인 문제는 극복했음이 확인됐다. 그 완벽한 자동설계 AI가 자본주의 시장의 필요성에 의해 언제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아직’ 이라는 막연한 미래를 가리키던 말이 내 옆을 스쳐 앞으로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건축 불경기를 걱정할게 아니라 AI를 걱정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걸 좀 낙관적으로 받아들이자면 나보다 설계를 더 잘하는 AI가 추가되는 것뿐이겠지만 그보다 더 좋지 않은 상황과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건축법을 통해 건축사가 아니면 할 수 없도록 정해진 일들로 우리가 보호받고 있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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