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을 가면 도시 한 켠의 언덕이나 산에서 도시 전체를 조망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피렌체, 시드니와 두브로브니크 여러 도시들을 떠올려보라. 때로는 도심에 기능을 가진 높은 타워를 만들어 전망대를 겸하기도 한다. 스페이스 니들이나 도쿄 타워처럼 말이다.

이렇게 도시를 좀 더 거시적으로 바라보게 될 때 몇 개의 랜드마크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경우도 당연히 있지만, 도시 전체가 만들어내는 질서를 바라볼 수도 있다. 각각의 도시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건물이 있지만, 도시는 수천 수만 가지 요소들의 총합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산과 강이 만드는 지형과 하나씩 생겨난 굽은 길과 건물들이 누적된 우리나라의 많은 도시들이, 불과 수십 년 만에 넓고 반듯한 길을 내고 작은 건물들을 밀어내 아파트로 채워진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비교적 역사가 짧은 계획도시 몇몇을 제외하면, 많은 도시들은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서울을 예로 들자면 조선의 수도가 된 것이 600년이 넘었으니 도시의 형성은 그보다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이다. 몇 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건물이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경제적 효과를 창출해낼 수 있지만, 그것이 세워지는 도시의 오랜 역사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규모의 공공건축물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결정이 필요할 수 있다. 수년 혹은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한 도시와 건물 계획은 전문가의 연구와 지자체장의 결정이 필요하다. 여기서 문제는 지자체장의 임기 내에 공사가 시작되거나 완성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수백 년의 역사 위에 수십 년 이상 존재할 건물을 만드는 일을 과감하고 신속하게 결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선견지명을 가진 지자체장의 결정이 훗날 되돌아보았을 때 훌륭한 결정으로 판단된다면 좋겠지만, 반대의 경우가 발생할 수 있으니 더 많이 연구하고 토론하면 어떨까.

최근 건축계의 몇몇 이슈들도 이러한 상황을 바탕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옛 건물을 남겨두고 그와 어울리게 계획한 설계공모과정을 무시하고 옛 건물을 철거해버린 사례에 많은 분들이 아쉬워했다. 새로운 지자체장의 결정이었다. 또한 한강을 중심으로 새로운 랜드마크들을 더하고자 하는 서울의 사례도 이슈가 되고 있다. 조금만 천천히 바꾸면 어떠했을까. 전문가들이 더 많이 연구하고, 토론하며 많은 분들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며, 이렇게 많은 고민을 바탕으로 한 결정이 지자체장이 바뀌어도 유지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도 되었으면 한다.

우리의 도시들은 눈부시게 성장해왔고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을 낳았다. 전쟁 이후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우며 올림픽을 유치해냈다. 한국 사람들이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살았었다고 하지만, 우리의 도시와 건축에 대한 결정은 ‘천천히’하면 좋겠다. 더 연구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보다 나은 아이디어가 도출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우리의 도시가 보다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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