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 건축계 설계공모 부정 근절 운동 확산과 청렴서약서 연명부 등 자정운동 필요”

건축 설계공모 심사로비 구습 여전
①선불 또는 후불로 후한 점수 줘 해당 업체로부터 수천만 원부터 최고 억대 뒷돈(설계비 10∼15%)…심사 도중 심사장 이탈해 업체와 금액 흥정하는 심사위원까지
②주최 측이 대회 열고 선수 나서는 일도…“심사 로비리스트 돈다” 건축계 소문 파다
③협력업체 동원 향응전담직원 배정해 관리, 상품권·현금 제공은 기본…수시 향응은 물론 ‘교수 집무실, 식당, 승용차 안, 심사위원 집 앞’에서 현금 전달
④당선 못 되더라도 돈 돌려받지 않고, 다른 공모전 심사위원 될 수 있어 ‘보험’ 들기도

“공정·투명한 설계공모 환경 바라는 현장의 수많은 건축사들 바람 이뤄져야”
협회, “신고 시 조사위 면밀히 조사, 사실 확인·연루 땐
‘자체 징계+국토부에 강력 처벌 요구’할 것”

“어떤 심사위원은 대놓고 왜 당신네 회사는 미리 찾아오지 않느냐, 라는 볼멘 소리를 지인을 통해 전하기도 했습니다. 봉투의 시세가 정해져 있고,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심사위원당 2천만 원. 대략 5∼6인 심사면 최소 1억이 듭니다.” 

최근 설계공모에 접수를 한 서울시 한 건축사는 “선배 세대에서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진 부조리가 시대가 바뀌어 끝날 줄 알았는데 여전하다 못해, 오히려 더한 것 같다”며 “떨어진 공모가 실력 부족인지 영업부족인지 가늠이 안 되고 몇날 며칠 밤새운 애꿎은 직원들만 속상해해서 참 기운 빠진다”라고 작금 설계공모에 대한 넋두리를 전했다.

그는 “어느 공모 심사평에는 ‘계획안이 아주 인상적이다’ ‘파격적이며, 새롭다’ 칭찬 일색이지만, 정작 선택되진 않는다”며 “2달 넘게 준비한 설계안을 불과 20분 안에 평가하는 심사위원은 경사지인 대지의 기본적인 레벨도 숙지하지 못한 상태다. 이 소모적인 일을 얼마나 더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건축사·관계자들에 따르면, 다소 과장 왜곡된 시각일 수 있으나 건축 설계공모가 일부 심사위원들의 거수기 노릇에 용돈 버는 ‘쏠쏠한 수단’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조달청 등에서 심사하게 됐다고 소문내고 다니는 심사위원 △심사 중 잠깐 나와 약정한 금액을 두 배로 올려 흥정하는 심사위원 △협력업체를 해결사로 내세워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수시로 만나 금품을 제공하고 식사와 골프대접을 하는 등 외관은 영업이지만, 엄연히 불법이자 범죄행위로서 공모 수주를 위해 심사위원들 대상 전방위 로비가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비 없이는 사업수주가 불가능하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올 지경이다.

(자료=대한건축사협회)
(자료=대한건축사협회)

또 최근 제보에 따르면, 대학 건물을 기획한 설계전공 교수가 업체와의 밀착관계를 통해 ‘짜고치는 뒷거래’를 하기도 했다.

“심사 후 우연히 프로젝트 펀드레이징을 위해 대학 누리집에 게시된 건물 조감도가 당선작과 거의 동일해 어찌 된 영문인지 알아봤더니, 학교건물 프로젝트를 맡은 설계전공 교수가 몇 차례 사전 기획한 안을 업체와 모의해 ‘이렇게만 하면 당선’이라고 해답을 제시, 사실상 공동수급 형식으로 참가해 당선시켰다.”

한 원로 건축사가 얼마 전 공모전에 참가해 몸소 겪은 일이다.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설계공모 부정과 관련해 로비 등이 암암리에 이뤄져 발만 동동 구르는 후배들을 위해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본인이 직접 나섰다고 밝혔다.

그의 말에 따르면, 수의계약이 불가해 설계공모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으니 업체와 ‘짜고 치는 뒷거래’, ‘셀프과제’를 한 것인데, 사실상 주최 측이 대회 열고 선수까지 한 셈이다. 그의 항의에 해당 교수는 실토하고, 사무소로 찾아와 사과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프로젝트는 공모 당시 10개 업체가 참가신청 했으나, 막상 접수는 2개 사무소뿐이었다. 본지가 확인 결과 펀드레이징 조감도가 올려진 해당 대학과 업체 누리집에는 당선작 조감도 등 그 어떤 관련 자료도 찾을 수가 없었다. 세움터 내 ‘공공건축 설계공모 정보서비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자료가 모두 삭제되고, 담당자가 공모 정보를 등록하지 않은 탓이다.

그는 학교 측에 본인을 제외하고 재공모를 할 것을 요청했지만, “프로젝트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진행 중이다”며 “좌절된 꿈의 크기는 돈으로 환산이 안 된다. 사무소를 경영하는 이의 고달픈 삶에서 또 한 두 달 기약 없이 또 그걸 해야만 사무소가 버텨주고, 막상 건축 의뢰는 없을 때 그 절망감이 얼마나 크겠나”라며 “공정·투명한 심사 공론화와 함께 대한건축사협회를 비롯한 건축계가 대책 마련에 나서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 외에도 최근 급격한 경기 침체로 민간 건축 시장이 얼어붙으며 공공부문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심사과정에서의 투명성·공정성 시비 사례는 많다.

다수의 제보에 따르면, △컨소시엄을 이루어 공동수급체로 설계공모를 같이 하다 심사위원과 참여업체로 만나 당선을 밀어주는 사례 △당선작을 정해놓고 들러리 세우는 공모전 △발주기관과 특정 업체가 유착해 참여조건에 특정 자격을 요구(스펙 알박기) △협력업체를 통한 우회적 로비 등 공모를 둘러싼 각종 잡음에 대해 “나도 당한 일이다” “놀랍지 않다”가 대다수의 반응이다.

A 건축사는 “일부 사무소에선 1인당 설계비 5%씩 로비로 사용, 당선되면 헐값에 외주를 준다. 결과적으로 공공건축의 설계품질은 떨어지고, 이 모든 문제가 건축의 위상에 나쁜 영향을 주게 된다. 건축 설계공모 취지와 달리 심사에 있어 끊임없이 크고 작은 공정성 시비에 휘말려 오히려 업계 부정적 인식을 가중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아프더라도 실상을 드러내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법과 처벌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문화와 의식이 바뀌어야 하는 문제인 만큼 범 건축계 관행 근절 운동 확산과 자정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한 건축사는 “심사 비리·부정행위 벌칙 수준을 높여야 하고, 현재 유일한 제척시스템이라 할 수 있는 세움터 내 ‘공공건축 설계공모 정보서비스’의 경우 각 지자체·공공기관 공무원들이 심사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는데 국토부 고시에 따른 의무사항이지만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범부처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구축 평가, 제척 시스템이 같이 작동해야 한다”며 “공모자료가 데이터베이스화돼 심사위원 선정 단계서부터 제척시스템이 가동되도록 담당자들이 강제적으로 등록하게 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하며, 건축계 자정 운동 및 청렴서약서 연명부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장’난 공공건축 설계공모 정보서비스_건축 설계공모 유일한 제척시스템이라 할 수 있는 세움터 ‘공공건축 설계공모 정보서비스’에 심사결과 미등록 공모가 현재 789개로 나와 있다. 심사결과 세움터 공개가 의무화돼 있지만,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자료=공공건축 설계공모 정보서비스 누리집 갈무리)
‘고장’난 공공건축 설계공모 정보서비스_건축 설계공모 유일한 제척시스템이라 할 수 있는 세움터 ‘공공건축 설계공모 정보서비스’에 심사결과 미등록 공모가 현재 789개로 나와 있다. 심사결과 세움터 공개가 의무화돼 있지만,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자료=공공건축 설계공모 정보서비스 누리집 갈무리)
(자료=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자료=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이어 “세움터 공모시스템을 검색해 보면, 어느 한 심사위원의 경우 2021년 한 해 무려 29건의 심사 건수가 검색된다. 책임감을 갖고 심사에 임하도록 심사 전 발주처와 같이 현장답사를 실시하고 미 참가 위원은 심사위원에서 제외토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협회 핵심관계자는 “문제가 곪을 대로 곪으면 언젠가는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신고가 있게 되면 협회 차원의 수단을 총동원해 적극적인 역할을 다할 것”이라며 “설계공모 관련해 협회 자체 윤리 강화 차원에서 건축부조리신고를 통해 비리사항이 신고·접수될 경우 이를 면밀히 조사해 사실이 밝혀지면, 일벌백계 차원에서 협회 자체 징계뿐만 아니라 국토부에 강력 처벌을 요구하고, 국토부 및 협회 징계 강화도 병행 추진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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