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관아 터 재해석, 또 다른 조화 만들어
주어진 환경 따라 어우러져, 누구나 편히 찾는 미술관으로
설계자 안용대 건축사 “작품 방해하지 않는 중성적 공간으로 설계”

국내 건축 문화를 이끌 다채로운 건축물들을 선정했던 한국건축문화대상, 해마다 심사위원들의 경탄을 자아내며 시기마다 건축문화를 선도했던 작품들은 주변 환경과 함께 잘 숨 쉬고 있을까? 대한건축사신문은 역대 수상작들을 다시 찾아 그 건축물들의 현재 모습을 살피고 설계를 담당했던 건축사와 건축주의 이야기를 듣는 기획을 마련했다. 그 열 아홉 번째 작품은 2022 울산광역시 건축상 공공분야 최우수상 수상작 울산시립미술관이다.

 21세기의 미술관은 당연히 21세기의 변화를 담아야 한다. 단순히 그림을 전시하고 관람객들은 전시된 그림을 보고 고개를 끄덕하는 모습에서 벗어나 전지구성, 융합성, 실험성에 부합하는 혁신도 담아내야 한다. 현재 미술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디지털 미디어아트도 찾아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전시, 관람이라는 본래 기능을 잘 수행해야 하며, 누구나 거리낌 없이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쉽지 않은 과제다.

2022 울산광역시 건축상 최우수상 수상작 울산시립미술관(안용대 건축사, .가가 건축사사무소)은 이러한 과제를 훌륭히 수행해 낸 작품이다.

울산시립미술관(설계=안용대 건축사 · (주)가가건축사사무소, 사진=윤준환 작가)
울산시립미술관(설계=안용대 건축사 · (주)가가건축사사무소, 사진=윤준환 작가)

미술관이 위치한 곳은 옛 관아가 밀집해 있던 지역으로 역사의 흔적이 쌓인 장소다. 건축사는 이렇게 쌓인 흔적을 디자인적으로 재해석해 21세기 감성에 맞게 다시 해석하려 했다. 건축물이 스스로 드러나기보다는 부지 좌우 동헌(東軒, 조선시대 지방 관서에서 정무<政務>를 보던 중심 건물)과 객사(客舍, 고려·조선 시대 각 고을에 설치했던 관사)의 배경이 되려 했다고 이야기한다. 옛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새로운 조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뜻이리라.

문화재 사이에 현대 건축물을 세워야 하다 보니 제약조건도 있었다. 최대 폭은 45m였으며 길이는 150m, 높이차는 15m 정도로 폭이 좁고 길며 경사진 땅에서 층수는 지상 2층으로 제한됐다.


설계자 안용대 건축사는 그 해결 방안으로 주 전시실을 1층이 아닌 지하에 두어 지상 볼륨을 절제하고, 지상 건물은 땅의 형상에 맞서지 않고, 원래 형상에 따라 길게 배치하고 건물을 북측으로 밀어 마당과 처마를 확보했다. 그렇게 주어진 환경과 대지 특성에 따라 어우러지며 누구나 편하게 찾을 수 있는 미술관이 됐다.

주 전시실은 선큰과 만난 긴 전시홀을 중심으로 대()전시실과 중()전시실로 구성됐다. 안 건축사는 전시효과를 위해서 조명, 공조 등을 일체화하여 작품을 방해하지 않는 중성적인 공간으로 계획하였다. 관람 동선은 전시흐름을 알기 쉬우면서도 공간을 경험하는 재미가 있고, 곳곳의 휴게공간과 연계된다라고 설명했다.

서진석 울산시립미술관장은 울산에 시립미술관을 지어야 한다는 논의는 2000년대 초반부터 있었으며,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된 지도 10년이 넘었다. 이렇게 긴 논의 끝에 완성된 미술관이 기대처럼 멋지게 지어져 기쁘다라면서 건축은 물론 엔지니어링 그리고 미술 영역 전문가들이 충분히 소통하며 마음을 모아 설계와 시공 과정이 진행됐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노력 덕택으로 이 건축물은 제18회 대한민국 토목건축기술대상 건축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설계자 안용대 건축사, 서진석 울산시립미술관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안용대 건축사와의 일문일답

안용대 건축사 · (주)가가건축사사무소(사진=안용대 건축사)
안용대 건축사 · (주)가가건축사사무소(사진=안용대 건축사)

Q. 이 건축물을 설계하시게 된 과정과 설계 과정에서 특히 염두에 뒀던 점을 설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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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에 걸친 설계공모로 201612월에 당선되었습니다. 설계에서 우선 고려한 점은 주변과 땅에 대하여 건축의 배려하는 자세에 대한 것입니다. 부지는 조선시대의 관아 밀집지역으로 역사의 켜들이 쌓여 있는 장소이기에, 이를 디자인 어휘로 재해석하여 기억과 풍경을 회복하고자 했습니다. 새로 들어서는 미술관이 주인공이기보다는 오래된 부지 좌우의 동헌과 객사의 배경이 되는 것이 주된 디자인 의도입니다.


Q. (앞 질문에서의) 염두에 뒀던 점을 어떻게 구현하셨는지요?

터의 무늬를 해석한 장소로서의 판을 만들고, 판과 판 사이의 투명성이 핵심적인 디자인개념입니다. 이 장치는 동헌과 객사가 만들어내는 과거의 풍경을 해치지 않고 하나의 새로운 풍경이 됩니다. 주 전시실을 지하에 두어 지상볼륨을 절제했습니다. 또한 지상의 건물은 경사진 땅의 형상을 따라 길게 배치하고, 건물을 북측으로 밀어 마당과 처마를 확보합니다. 외부로 드러난 판은 마당이나 긴 처마는 도시흐름과 미술관이 만나서 다양한 행위가 일어나는 열린 공간입니다.

Q. 설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모든 건물이 그렇지만 특히 미술관 건축은 설계에서 시공까지 전시공간에 대한 이해와 협력이 필요합니다. 미술이 돋보이려면 디테일이 단순해야 좋기에 건축, 기계, 전기, 소방, MI, 가구 등 모든 분야가 건축을 중심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시공간에 대한 소통부족으로 협력사들의 섬세하지 못한 설계가 있었고, 시공에서는 디테일이 거칠게 되어 아쉽습니다.

Q. 건축설계를 시작하면서 가진 건축적 지향점이 있다면?

좀 만만하고 쉽게 찾을 수 있는 일상 속의 미술관이면서, 건축보다는 오히려 미술이 돋보이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주변 환경과 만나는 장소의 개방성이 강조된 디자인입니다. 관람동선은 전시흐름을 알기 쉬우면서도 공간을 경험하는 재미가 있고, 곳곳의 휴게공간과 연계됩니다. 전시효과를 위해서는 소방, 조명, 공조 등을 건축마감과 일체화하여 작품을 방해하지 않는 중성적 공간으로 설계했습니다.

Q. 그 지향점을 이 작품에 잘 반영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설계공모와 실시설계 후 착공까지는 범용의 시립미술관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개관 준비 시점에는 미디어 중심의 미술관으로 성격이 변경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성격에 맞춰서 약간의 설비적 보완은 있었지만 이미 공사가 진행되어 많은 변화는 없었습니다. 시공 품질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인 설계의도가 유지된 점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Q. 이번 수상이 건축사님에게 어떤 의미인지?

부산시립미술관 부설 이우환공간을 설계한 경험이 있으며, 미술애호가로서 미술관 공간을 설계할 기회가 주어져 특히 의미가 있습니다. 울산시립미술관의 설계와 수상은 미술을 대하는 건축의 자세, 공공건축의 설계와 시공, 설계자의 직접감리의 필요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Q. 근래 들어 관심을 두고 있거나 설계에 적용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지역의 아틀리에 조직으로도 사무실을 잘 운영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연차별로 습득해야 할 직원들의 건축역량 향상과 소규모사무소의 장점을 살리는 방향이 최근의 고민입니다. 설계는 도시를 대하는 건축의 자세에 관심이 많으며, 이미지 위주보다는 평면을 중심으로 한 공간연출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서진석 울산시립미술관장과의 일문일답

서진석 울산시립미술관장
서진석 울산시립미술관장(사진=서진석 울산시립미술관장)

Q. 처음 울산에 시립미술관이 지어져야 한다는 논의는 언제였나요?

2000년대 들어서면서 울산 미술계 인사를 중심으로, 울산에도 미술관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부터는 좀 더 구체적인 추진계획이 논의되기 시작했고요. 그러한 논의가 공감대를 얻으면서 이렇게 울산시립미술관이 20221월에 문을 열게 됐습니다.

Q. 건축물을 보면, 옛 관아 터 풍경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옛 풍경 속에서 거닐다가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는 편안한 건축물로 지어진 것 같은데, 관장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맞습니다. 설계공모 심사 과정에서도 그러한 점이 많은 점수를 얻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보기에도 좋고요.

Q. 울산시립미술관은 지난 2022년 초 개관했습니다. 코로나19 영향은 없었는지 그리고 당초 관람객 예상치만큼 실제 미술관을 찾았는지요?

원래 2021년 가을에 개관하려 했는데 여러 사정으로 약간 늦춰졌습니다. 그리고 지난 1년 동안 20만 명 정도가 미술관을 찾아주시길 기대했는데 그 목표는 달성했습니다. 앞으로 울산을 상징하는 시설로서 전국에서 많은 분이 찾아주시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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