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가 물을 이해하는 게 왜 중요할까. 물은 거주자의 생활뿐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에 영향을 주는 요소다. 특히 상하수도는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꾸준한 유지관리를 해야 하는 복잡한 설비 구조를 갖춰야 한다. 그래서 상하수도 관리는 지자체에 위임하고, 농촌 지역은 현장에 적절한 관개시설을 구축해 사용한다.

깨끗한 물은 생명 유지와 지역 발전에 있어 필수적이다. 안타깝게도 물 형평성이 어긋나 물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미국 내 취약 지역도 있다. 지역 단위로 차이가 나는 물 사용의 형평성 유지를 위해 건축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AIA는 말한다. AIA는 궁극적인 건축의 역할이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생태계에 긍정적인 기능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일명 리빙 아키텍처(Living Architecture)라 불리는 건축은 건축과 환경 사이에서 흐려진 우리의 사고를 전환시킨다. AIA는 효과적인 수자원 관리를 위한 방안을 공유한다.

AIA가 건축의 생태적 역할, 특히 물에 대해 강조하는 것은 미국적 배경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 개인이 필요한 물을 사용하기까지 가열, 냉각, 가압, 오폐수 처리 등 모든 과정에 에너지가 든다. 이와 관련해서만 미국은 매년 2억 9천만 톤의 탄소가스를 배출하고 있다. 그럼에도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제공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텍사스, 플로리다 등 취약 지역은 물 부족으로 인한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통계적으로 약 170만 명의 미국인이 배관 시설이 부족한 곳에서 살고 있으며, 소득 하위 20%는 월 가구 소득의 1/5을 물에 쓰고 있다. 물 형평성은 모든 지역사회가 안전하고 깨끗하며, 저렴하게 식수와 오폐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때야 이룰 수 있다.

건축사는 형평성 있는 물 제공을 위해 물 관리 시스템을 이해해야 한다. 유역, 지하수, 지역 수계의 기능을 식별하고 홍수, 폭설, 폭풍, 가뭄 등 수자원에 영향을 미치는 시기를 파악해야 한다. 오폐수 처리 인프라를 확인해 물이 처리되는 과정을 알아두는 것도 필요하다. 지자체에 처리 인프라가 있는 경우라면 폐수 계통과 처리 시설의 평균 수처리 비용, 위치, 용량, 종류, 처리수준 등을 확인하고, 인프라에 과부하가 걸릴 수 있는 산업시설, 농업, 운송, 주거 등 출처의 잠재적인 오염 위험을 식별해야 한다.

무엇보다 식수를 우선으로 확보한 뒤에 최대한 물 사용을 줄이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수자원 확보를 위해 빗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빗물을 모아 중수도(中水道)를 통해 재사용하고 폐수의 전략적인 관리가 필요한 이유다. 변기 물을 내리거나 처리과정을 거쳐 식수로 활용할 수도 있다. 빗물 관리가 중요한 건 도시의 우수한 하수도 시스템과 하천 수용에 부담을 줄이고 지하수 공급에 도움을 주며 수자원을 깨끗하게 유지시키기 때문이다.

걸프 코스트 연구소(Gulf Coast Research Laboratory)의 해양 교육 센터(Marine Education Center)는 해양 환경에서도 지속가능한 건축 기술을 보여준다. 이곳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건물이 파괴됐고, 재건축을 위해 설계를 진행하는 동안 두 번째 폭풍이 같은 곳을 덮쳤다. 우여곡절 끝에 공사를 진행하는 와중에도 허리케인 네이트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허리케인이 관통하는 해안지역에 위치한 만큼 재해에 대비하고, 재해 발생 시 해양 오염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재료를 선택해 AIA가 ‘물에 대한 디자인’에 적합한 사례로 꼽는다. AIA는 “MEC를 보면 건축사의 사려 깊은 관심이 건물 곳곳에서 드러난다”며 “해안 지역에 위치한 건축물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혹 범람하더라도 건축물의 복원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갖춘 곳”이라고 말했다.

MEC는 허리케인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던 건축물인 만큼 설계 단계부터 홍수, 폭풍, 해일에 대비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됐다. MEC는 콘크리트 교각 덮개가 있는 나선형 교각 기초 위에 건물을 지어 완충지대를 만들었다. 이 교량이 자연적으로 배수를 유지하고 인근 숲을 보호한다. 건물 지붕은 가파른 경사형으로 만들어 빗물이 빠르게 흘러내리게 했다. 배수관을 통해 지하 저수조로 저장된 빗물을 수세식 화장실에 재사용한다. 지역 토양에 특화된 조경을 식재해 별도의 물이 필요하지 않도록 했다.

바다 근처에 위치한 건축물인 만큼 염분에 강한 내구성을 갖추도록 시멘트 보드 사이딩과 유지 보수를 위해 복합 데크가 사용됐다. 건설 현장에서 수급이 용이한 황송(yellow pine)을 썼다. 자연 재해 발생 시 해양 환경 보호를 위해 침출, 오염 위험도를 낮추기 위해 구리, 아연, 비닐, 플라스틱을 제외했다. 지붕도 아연 대신 부식에 강한 갈바륨이 적용됐다.

MEC는 소규모 해안 커뮤니티를 위해서도 활용되고 있다. 멕시코만 중북부 해안 생태계에 초점을 맞춘 고등 교육과 해양 직업 교육도 진행한다. 교육 외에도 생태계, 서식지, 해안 회복력 등에 관한 연구도 활발히 이뤄진다.

건축을 통한 보다 나은 삶을 위해 AIA가 제안하는 열 가지 프레임은 큰 틀에서 사람을 위한 디자인, 자연 환경 변화에 따른 디자인, 그리고 기후 위기 시대의 디자인을 아우르고 있다. 생태계를 위한 디자인을 다룬 만큼 다음 편에서는 ‘경제를 위한 디자인’을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