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관심을 끌고자 제목을 정한 것이 아니다. 건축사는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는 건축공간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 다양한 상황을 예측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도 한다. 또한 사용자의 안전을 책임지는 동시에 쾌적한 환경이 되도록 계획해야 한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인지 되새기고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서양에서 직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Architect라고 답하면 훌륭한 직업을 가졌다며 존중해 준다. 하지만 지금의 국내에서는 이처럼 중요한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인지 자체가 낮을뿐더러 너무 낮은 수준의 대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 저가 수주를 경쟁하며, 무료로 일해주기를 요구받기도 한다. 갈수록 다양한 업무가 추가로 요구되는데도 불구하고 합당한 대가가 더해지지 않고 있다. 우리는 자부심을 고취 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겸손을 가장하고 경쟁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있는 것 아닐까.

이것은 많은 현상과 연동된다. 사진과 음악을 만들어낸 권리는 철저히 지켜야 하지만, 건축작품을 만들어낸 건축사의 이름은 TV와 출판물에서 찾기 어려운 것도 건축사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한 시청사의 공모 당선작이 무시되고 옛 청사를 철거하기도 하고,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며 계획된 상징적인 건축물을 건축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매우 유사한 형태로 다시 만들겠다는 것 역시 건축사에 대한 존중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해준다.

어쩌면 이러한 상황에 대한 개선 의지가 마음속에는 있지만, 현실은 실천하기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일 수 있다. 저가 수주에 대응하여 살아남기 위해서 더 낮은 저가 수주를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협회에서 민간설계대가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있지만, 과연 실행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가진 건축사도 많아 보인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함께 벌이는 소모전이며 우리의 건축 수준을 낮출 뿐이다. 기준을 가지고 모두가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데 적극 동참해야 한다.

건축사의 가치에 흠짐을 내는 또 하나의 요소는 윤리적인 문제이다. 각각의 사업체를 운영하기 위해서 영리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여전히 자격대여가 이루어지고, 불법건축물이 조장되기도 하며, 설계공모가 공정한지 의문이다. 사업체의 영리추구가 이러한 윤리문제를 앞질러도 되는가. 윤리적인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공자가 했던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거기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나보다 나은 사람에게는 장점을 배우고,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는 단점을 교훈 삼으라는 뜻이다. 지금까지 내가 만나본 모든 건축사는 저마다의 분야에 깊이 있는 생각과 역량을 가지고 있는 스승이었고, 사회적으로 존중받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된다.

건축사로서의 업무가 매우 가치 있는 것임을 자각하고, 건축사가 더욱 존중받고 좋은 대우를 받도록 함께 노력하자. 다시 한번 확신을 담아 적어본다. 모든 건축사는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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