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진섭 건축사)
(사진=김진섭 건축사)

한옥마을의 형성
전주시 완산구 교동 및 풍남동 일대에 전주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발돋움한 한옥이 밀집하여 군락을 이루고 있고 경기전, 전주향교, 한벽당, 오목대와 이목대, 전동성당 등 역사를 간직한 건물들이 밀집해 있다. 이 한옥마을은 천년 고도를 품은 전주 시민들의 자긍심이며 인근 구도심 일대가 역사문화벨트로 묶여 같이 발전하고 있다.

현재는 풍남문만이 남아 있지만, 일제강점기 이전 전주에도 4대문이 있었다. 1907년 조선통감부의 폐성령에 따라 풍남문을 제외한 3개 성문이 동시에 철거되면서 성 밖에 있던 일본인들이 도심으로 대거 유입되었다. 이에 대한 반발로 1930년대부터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 전주 한옥마을의 유래이다. 전주 한옥마을이 특별한 이유는 이 같은 민족적 자긍심에 기초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곳엔 700여 채가 넘는 한옥이 옹기종기 들어앉아 옛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이곳은 말 그대로 원도심 한가운데 전통 한옥에서 사람들이 생활하는 마을이었다. 당시에도 한옥들 자체는 문화재 취급을 받아 함부로 개수하지 못하게 했는데, 그러면서도 지원은 부족하여 거주민들은 많은 불편을 겪었다. 그러다가 2000년대 후반 전주시에서 관광지로 정비하기 위해 기존의 건물들을 대거 철거하고 노후 된 한옥은 수리하고 한옥신축을 늘리는 등 정비사업을 하였다.
 

(사진=김진섭 건축사)

전통문화의 집결지
전주 한옥마을 탐방은 경기 전부터 시작된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신 경기전은 1410년에 세워진 건물이다. 당시에는 ‘어용전’, ‘태조진전’ 등으로 불리다 1442년 세종 때에 ‘경기전’이 되었다. 경건한 장소답게 입구에 해태 2마리가 받치고 있는 하마비가 서 있다. 계급과 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리고 잡인들의 출입을 금한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경기전 안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전주사고와 태조, 태종, 세종, 정종, 철종 등 조선시대 왕들의 초상이 전시된 국내 유일의 어진박물관이 있다.
한옥들이 서로 처마를 맞대고 있는 골목길과 수령 600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있는 풍경은 도심 안에서 갑자기 과거로 훌쩍 뛰어드는 듯하다.

오목대에 오르면 한옥마을 전경이 한눈에 담기는 또 다른 명장면을 만나게 된다. 오목대는 고려 말 삼도순찰사였던 이성계 장군이 남원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승전고를 울리며 개경으로 돌아갈 때 들렀던 곳이다. 이곳에서 이성계는 부하들에게 연회를 베풀고, 한나라의 유방이 불렀다는 ‘대풍가’를 읊었다고 전해진다.

오목대에서 태조로를 따라 풍남문으로 가는 길목에 전주명품관과 전주공예품전시관을 지나 전동성당을 만나게 된다. 한옥마을 끝자락에 자리한 근대 건축물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한옥마을 내에 자리해 우리 고유의 전통과 서양문화가 융합된 독특한 아름다움이 눈길을 끈다. 

전주 한옥마을에서는 누구나 손쉽게 체험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옛 인쇄 문화와 한지 제작 과정 등 여러 가지 체험을 할 수 있으며, 한옥 숙박 체험을 할 수 있는 집이 많다. 전주한옥생활체험관은 조선시대 양반집을 떠올리게 하는 곳으로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와 안마당, 사랑마당을 갖춘 전통 한옥 구조로 되어 있다. 볕이 잘 드는 마당에 놓인 항아리들과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툇마루가 정겹다.

넓은 평야와 바다를 연결하는 천혜의 지리 조건을 갖춘 전주는 예부터 풍요로운 고장으로 손꼽혀왔다. 덕분에 판소리, 한지 같은 문화예술 활동이 활짝 꽃을 피웠다. 2010년 ‘한국관광의 별’ 관광시설 부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전주 한옥마을은 지금도 넘쳐나는 매력으로 수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전주시는 지난해 전주 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 수가 1,129만 4,916명으로 집계돼 역대 최고라고 밝혔다. 한국의 전통문화가 가득 담긴 전주 한옥마을은 외국인 여행자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옥마을 주소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교동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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