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
- 최호일
어린 나비 한 마리가
바위의 가슴에 앉는 찰나 바위는 금이 갔다
찬란한 생성의 힘 어둠의 몸통이
흰뼈를 내보이며 망설이고 있다
천년의 침묵은 보람도 없이
쩡
깨져버린다 금의 틈새에
마악 도착한 햇빛이 묻고 이제 싹 틔울
씨앗 하나 즐겁게 접속된다
꽃이 피고 그것은 언제나 환한 중심이
되었다 꽃의 얼굴은 늘 개폐의 원리를 따른다
신나게도
그리움의 회로를 타고 와
내 안에 불이 켜지는 그
- 최호일 시집 ‘바나나의 웃음’ 중에서/ 문예중앙/ 2014년
우수도 경칩도 지났다. 사계절 중에서 스위치가 켜지듯 계절이 환희 밝아지는 느낌은 아마 봄일 것이다. 온도가 그렇듯 꽃이 피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지난 겨울은 혹독했나? 겨울이 혹독한 만큼 봄의 느낌은 더 새롭다. 이 시에서 나비는 꽃이 아니라 바위와 엮인다. 수천 년 수억 년 동안 한 번도 열지 않은 마음이 그토록 가벼운 나비가 앉는 것만으로도 열린다. 기다렸다는 듯이, 가 아니라, 어이없이―누군가에 의해 켜지는 그 온도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 사연을 알 것이다.
함성호 시인
haamx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