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진섭 건축사)
(사진=김진섭 건축사)

금대암(金台庵)의 유래
지리산 북쪽 산자락의 경남 함양군 마천면에서 전북 남원시 산내면 쪽으로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오른쪽 산자락 길 입구에 세워진 ‘지리방장제일금대(智異方丈第一金臺)’라는 표지석을 만날 수 있다. 방장(方丈)은 지리산의 다른 이름으로 금대암이 지리산에서 으뜸가는 절집이라고 하는 뜻이다.

금대암의 창건 시기는 인근에 있는 안국사와 같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등구사의 내력을 기록한 ‘지리산등구사사적’에는 행호라는 승려가 등구사를 창건한 이듬해인 657년(신라 태종 연간)에 안국사를 지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경암응윤 역시 ‘근거할 만한 사적은 없으나, 신라~고려~조선시대에 이르는 동안 고승 대덕이 머물렀던 곳’이라며, 금대암이 신라시대부터 존재했던 고찰이었을 것이라는 그의 생각을 ‘금대암기’에 전하고 있다.

금대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이며, 금대사(金臺寺)라고도 한다. 금대암은 신라 도선국사가 참배지로 인정했으며, 서산대사가 수도 성취하였다는 구전이 전해오고 있다.

현대에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다가 한국전쟁 당시에 소실된 뒤 금대암 복구기성회가 조직되어 중건되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인법당(人法堂)과 산신각(山神閣) 등이 있으며, 중요문화재로는 1972년 경상남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금대사 삼층석탑이 있다. 이 삼층석탑은 행호가 절을 창건할 때 세운 것으로 전해지나, 탑의 조성수법으로 보아 고려 말 또는 조선 초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금대산은 민족의 영산 지리산 하봉, 중봉, 천왕봉, 제석봉, 연하봉의 풍경을 조망하기 최적의 장소이다. 금대산의 9부 능선에 자리한 금대암에서 바라본 지리산의 풍경을 ‘금대지리’라고 하며 지리산의 주 능선을 조망할 수 있다. 금대암에서 지리산을 바라보면 활처럼 뻗은 지리 능선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마천면에는 9개의 사찰이 있으나 1금대, 2벽송, 3상무주라 하여 금대암을 으뜸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불교에서 ‘금’은 부처님을 뜻하고, ‘대’는 앉은 자리를 뜻하니 금대암은 곧 부처님이 앉은 자리라는 뜻이다.
 

(사진=김진섭 건축사)

금대암의 전나무와 도마마을 다랭이논
금대암의 전나무는 지리산을 바라보며 우리나라 산맥을 잇는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자리한 금대암 입구에 두 그루가 서 있었는데, 한 그루는 벼락을 맞아 없어졌다. 나무의 나이는 500여 년 정도로 추정되며, 큰 나무의 높이가 40미터, 둘레가 2.92미터로 우리나라 전나무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며 가장 크다.

예로부터 금대암에서 보는 지리산의 풍경은 최고로 꼽혔다. 금대암 앞뜰에서 전나무 너머로 바라보는 지리산 주 능선은 서북방의 노고단으로 동남방의 천왕봉까지 활처럼 휘어지며 동북방을 껴안은 듯한 모습이다.

탁영 김일손이 쓴 기행문의 내용으로 미루어 행호조사(行乎祖師:1403년)가 다시 세운 금대암에는 오래된 소나무가 많이 있었으며 현재의 전나무도 당시의 나무로 추측을 하고 있다.

금대암을 오르는 길은 콘크리트로 포장된 급경사의 구불구불한 좁은 길을 올라가야 한다. 금대암 방향으로 조금만 오르면 도마마을의 다랭이논 촬영 표지판이 있다. 예전에는 CNN에서 ‘한국에서 가봐야 할 아름다운 50선’에 뽑힐 정도로 유명한 촬영지였으나 현재는 다랭이논 주변이 조금 축소되었고 논에서 밭으로 경작하는 부분이 제법 보인다. 가을 추수가 될 즈음에는 산 가운데로 황금빛 물결이 장관을 이루었는데 지금은 많이 축소되어 있다. 전국의 사진가들을 불러 모았던 지리산의 명소는 더는 찾는 이가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출처 : 함양군 문화관광]
금대암 주소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천왕봉로 1035-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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