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팡집

- 백상웅

 

어떤 집은 베개처럼 잠을 잔다.
저기 복사꽃 속에 숨은 술집이 그렇다.
집터도 하도 낮아 존재조차 의심스러운
저기 벽돌집은 취해 뒤척이며 잠을 잔다.

나는 그곳에서 취하기 위해 망설였으나
들어가는 손님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이게 낡은 벽돌집의 모략인가 싶어,
동료를 끌고 가 주문을 하고 싶어도
들어가 취해도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바깥에서 안이, 안에서 바깥이 보이기 전에
늦지 않게 거하게 취하고 싶은 때였다.

대문을 활짝 열어젓히고 복사꽃 헤치며
다리 풀린 노인들이 술집에서 나오고 있었다.

젊었을 때 들어간 손님이 늙어버린게 아닐까?
그럼 나는 뭐하자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던가.

분명 내가 본 어느 술집의 이야기다.

 

 

- 백상웅 시집 ‘거인을 보았다’ 중에서/ 창비시선/ 2012

옴팡집은 바람이 많고 토질의 투수성이 좋은 제주도에서 흔히 발견되는 집의 형태다. 보기에 가운데가 좀 오목하게 들어간 모양을 표현하는 ‘옴팡지다’는 말에서 나온 옴팡집은, 육지에서는 지형의 특징보다는 ‘아주 심하거나 지독한 데가 있다’는 뜻으로 주로 음식점 이름으로 더 유명한 것 같다. 그만큼 만드는 음식에 고집이 있다는 뜻이 아닐까? 시에서 나오는 벽돌집은 그런 옴팡진데 있는 옴팡진 술집이었나 보다. 젊어 들어간 손님이 늙어야 나오는 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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