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할 즈음 익히 알고 있듯이 교수신문에서는 그 해를 되돌아보는 사자성어를 선정함에 있어 선비 다운 격조로 마무리한다. 몇 해를 살펴보면, 첫 시작은 어떠한 일을 예측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오리무중’이었다.

2011년은 나쁜 일을 하고 남의 비난에 귀를 닫지만 소용없음을 의미하는 ‘엄이도령’, 2016년 수많은 이들을 광장으로 집결 시켰던 시기에는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며 물이 배를 삼켜버린 이때 ‘군주민수’가 선정되었다. 2021년은 고양이와 쥐가 같은 곳에 있음을 의미하는 ‘묘서동처’가 선정되어 사익에는 그 누구도 따로 있지 않음을 지적했고, 작년 드디어 2022년에는 참사 이후 누구도 잘못을 알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과이불개’로 시대를 꾸짖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매운 다그침만 있지는 않았다. 2006년부터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희망의 사자성어’도 같이 선정하였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었던 것은 ‘군자는 화이부동하고 소인은 동이불화 한다’는 말에서 비롯된 ‘화이부동’이었을 듯하다. 그러나 2015년 이후 더 이상 희망의 메시지는 들려주지 않는다.

왜 작은 언론에서 내어놓는 단 네 글자에 주목을 하였을까, 하면 연말 연초 쉽게 접할 수 있는 과점의 거대 언론들의 사설을 보면 알 수 있다. 여의도 이슈만 가득할 뿐 그 이면에 가려진 어떠한 위기감도 2023년에 접어들어 참고해야 할 어떤 지표도 존재하지 않는다.

항간에 주위에서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말들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오랜 기간 지속된 COVID-19는 그 피로감에 경계는 무뎌졌지만 추세는 기울지가 않았으며, 소비자 물가는 24년 만에 가장 큰 폭 상승하였고, 경기 침체 우려는 확산되고 금리 인상과 고물가 부담을 안고 가야 할 실정이다. 그보다 우선적으로 건축사에게 체감으로 다가온 것을 살펴보면 공사비와 직결되는 콘크리트와 철근 등의 원자재 가격 상승과 파업으로 한동안 멈춰야 했던 현장들이 많았고, 사업 기간이 연장되고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건축사사무소의 경우 사업이 무산되어 계약파기 수순으로 진행되거나 설계를 마쳤음에도 인허가 이후 착공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당장 건축설계 인허가 건수가 예년에 비해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는 것은 시장 규모가 위축되었음을 간파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중견과 대형을 가리지 않고 건설사 또한 위험 수위에 다다르고 있다. 민간 시장은 경색되었고, 공공설계는 발주 물량이 축소되고 경쟁은 심화되고 있다.

어떻게 준비하고 맞아야 할 것인가. 2022년은 ‘과이불개’였다. 그런 누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재량으로 부양을 하기에는 미력하다. 하지만 건축사협회가 젊어진 만큼 그동안의 모든 갈등은 씻고 바로잡아 준비를 해야 할 시간으로 삼아야 한다. 각자에게 적합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하겠지만, 이미 어려움이 닥칠 것은 알고 있다면 해결을 위한 다각화된 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협회는 그들의 소리를 듣고 대응해야 할 것이다. 2023년 겨울, 마무리 즈음에 쓰여 질 희망의 사자성어를 미리 한번 구상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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