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산업에 대한 인식 낮은 국내 풍토에서
자율경쟁에만 맡길 경우 건축설계 품질·성능 하락 불가피

공공재 ‘건축’, 설계비 정상화 없이
‘건축물과 공간환경 질적 향상, 건축문화 발전’ 목표 달성 어려워

민간대가 기준 부재에 따른 부작용 시장 전체에 만연, 임계점 도달해
‘공정한 대가지급→우수인력 유입→산업경쟁력 확보’ 뿌리내리도록
“정부 지원 절실” 한목소리

건축은 순수하게 시장에서 완전경쟁을 하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되는 산업이다. 특히나 건축서비스에 대한 인식이 낮고 건축설계를 시공의 부속적 산업으로 치부, 가장 기본적인 지적재산권마저 존중하지 않는 국내 풍토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외국사례를 보더라도 건축설계비가 공공의 안전과 부실설계를 방지하는 비용이라는 인식하에, 일종의 보호막 내지 안전장치를 둔다. 이유는 건축물이 국민이 생활하는 공간환경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공공재적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 ‘건축사사무소 개설자가 그 업무에 관해 청구할 수 있는  보수의 기준’이라는 민간 설계시장에 대한 대가기준 유지

(사진=pixabay)
(사진=pixabay)

가까운 일본을 보더라도 건축사법에 건축주 등과 건축사사무소가 계약 체결 시 보수를 산정하기 위한 기준을 정해 우리나라 실비정액가산방식과 유사한 방식의 민간시장에서도 준용할 수 있는 대가기준을 시행하고 있다. 국토교통성 고시인 ‘건축사사무소 개설자가 그 업무에 관해 청구할 수 있는 보수의 기준’이 그것이다.

일본의 건축사법은 이에 더해 건축주가 건축물의 품질과 성능 향상에 힘쓰고, 좋은 건축·공간환경에 기여하도록 하기 위한 ‘건축주의 의무’도 규정하고 있다. 건축사법 제22조의3의4는 “건축사에게 업무를 위탁하는 자는 계약을 체결할 때 이 기준에 따라 위탁 대금으로 계약을 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문화하고 있다.

(자료=대한건축사협회)
(자료=대한건축사협회)

이에 대해 건축연구원 김용준 책임연구원은 “건축물 종류별, 연면적 규모별로 설계 품셈기준을 정하고 여기에 매년 별도로 공표되는 노임단가를 곱하여 설계비를 산출하는 방식으로 물가상승분이 반영되는 합리적인 기준이라 할 만하다”고 평했다. 2020년 1993년 이후 정체된 건축설계대가 요율이 27년 만에 평균 3.3% 인상된 바 있는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이다.

◆ 공공·민간건축물 동시 적용하는 HOAI(건축사 및 엔지니어를 위한 업무대가규정) 운영

(사진=pixabay)
(사진=pixabay)

독일은 건축사계약을 위한 업무대가 기준은 건축사보수법을 따라야 하며, 그 기준은 HOAI(건축사 및 엔지니어를 위한 업무대가규정)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설계업무대가를 산정하는 데 있어 공공건축물과 민간건축물 역시 구분하지 않는다. 이는 독일 전체의 도시건축문화의 질적 향상을 위한 적정 업무대가 통합 기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 국내 건축사 대가기준은 1966년 제정된 이래 1993년까지 6차 개정을 거친 후 독과점 논란에 따른 대가기준 폐지, 재제정의 과정이 반복됐다. 2008년 민간 대가기준이 폐지돼 공공이 발주하는 사업에 한정해 기준이 적용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폐지와 재제정이 반복됐다는 것은 독과점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대가기준 폐지에 따른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저가 설계 수주 경쟁과 이에 따른 인력과 투입 시간 감소로 건축물의 품질·성능 하락 현상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수 있어서다. 실제 ‘건축사업무 및 보수기준’이 1999년 폐지됐다가 다시 부활한 2002년 당시 건축사법 개정안이 논의된 제16대 국회 회의록에 따르면 ‘건축사 업무범위 및 대가기준’을 제정하는 이유에 대해 국회 건설교통위원장은 “건축물의 부실설계, 부실감리를 예방하고 공정한 거래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라고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자료=대한건축사협회)
(자료=대한건축사협회)

현재 민간대가 기준 부재에 따른 설계대가 하락 등 부작용이 시장 전체에 만연해 있다. 민간건축물 설계비의 경우 공공 대비 20%에도 못 미치는 형편으로, 저가 수임 경쟁에 따른 젊은 층의 인력유입이 끊기고, 건축설계 품질·성능 하락 등 업계 전체에 부정적 영향이 적지 않다. 건축물이 국민이 생활하는 공간환경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공공재적 가치를 지님에도 이대로 방치해도 되는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와 더불어 업계의 노력만으로는 설계비 현실화를 도모할 수 없으므로 이제는 정부가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래야 수요자 우위의 저가 시장으로 설계품질 저하에 따른 시공·성능부실, 산업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대한건축사협회 법제정책처 관계자는 “서비스 산업에 대한 인식이 선진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한국에서 자율경쟁에만 맡길 경우 건축서비스 질적 하락이 불가피하다”며 “건축물의 품질과 성능을 담보하기 위해선 건축사법에 정해진 기준에 따라 건축사가 적절하게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 전제인 건축사가 그 직능을 충분히 개발할 수 있는 적절한 업무환경이 정비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적정한 수준의 업무보수가 확보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서 외국사례를 보더라도 공공재인 건축에 대해 민간대가기준을 제정해 가이드라인으로 삼고 있는 만큼 건축물의 공익추구와 바람직한 공간환경 기반이 조성될 수 있도록 민간부문 건축설계 업무와 대가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