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이 하나 지어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법규를 반영해야 한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건축 관련 법, 소방 관련 법,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주차장법, 각 지역의 자치법규 등 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어떤 법에 저촉되는 부분은 없는지, 특별히 적용되는 다른 법안은 없는지 면밀히 살피는 데에만 한참이 걸릴 정도다. 그 와중에 법규는 끊임없이 개정되기에 때마다 각 법규를 새로 공부해야 하는 경우도 많은데, 다른 프로젝트들을 바쁘게 진행하는 사이 어느새 바뀐 법규에 당황하게 되는 것도 부지기수다.

대다수의 법들이 문제발생의 과정에 집중하여 발생률을 낮추려 하기보다는 원인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하다 보니 아무것도 짓지 말라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한다.

2024년 12월 시행예정인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뜨거운 감자다. 특정소방대상물의 범위에 다세대주택이 포함되어 간이스프링클러를 필수로 설치해야 하는데, 간이스프링클러 설치 방법 중 가장 설치가 간편한 방법을 택한다고 해도 각 층 별로 냉장고만 한 캐비닛형 설비를 배치해야만 설치가 가능하다.

1, 2센티미터가 아쉬운 다세대 주택에 자비로 해당 설비를 설치하는 것은 건축주의 몫이라 하더라도 기계결함, 결빙 등의 문제가 없도록 유지관리하는 것은 결국 다세대 주민의 몫이다. 소방안전의 관점에서 더 안전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다는 번지르르한 이유 뒤에는 결국 그것을 관리할 비용과 인력이 필요하고 본인이 그를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세대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층당 최대 132∼165제곱미터도 되지 않는 건물에 3.3제곱미터를 내주는 것도 억울한데, 아파트처럼 체계적 관리가 어려운 소규모 다세대의 세대주들이 설비를 잘 유지관리할 수 있을지도 무리수이며 그를 교육, 감독할 국가적 체계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다세대의 주민들에게 생활 소방안전에 대해 교육하고, 사용자 스스로가 조심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

점점 강화되는 단열에 관한 제재도 비슷한 맥락이다. 점점 더 두꺼운 단열재를 적용하여 건물을 지으면 결국 국 한번 끓이면 환기를 시키지 않고는 안 되는 숨 막히는 실내가 탄생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열교환 환기장치를 별도로 설치하는 경우 친환경적 설비를 설치한 건축물이라고 하지만, 열교환장치에 들어가는 먼지필터는 2개월마다 교체해 주어야만 성능에 문제가 없고, 사용자의 호흡기에도 안전하다.

그 먼지필터를 만들어내는데 쓰이는 에너지와 자재가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졌다고, 열교환장치를 24시간 내내 가동하는 전기가 친환경적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친환경으로 향하는 길은 난방을 덜 하는 것이지, 두꺼운 단열재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대형 자본이 투입되는 대형 건축물은 불특정 다수가 다중으로 이용하는 건축물이므로 안전에 소홀해서는 안 되겠지만 소수의 사용자가 정해져 있는 단독주택, 다가구, 다세대주택의 경우는 다르다. 소규모 건축의 경우에는 개인 건축주에게 경제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타격을 주는 법률 때문에 건축 프로젝트가 엎어지는 경우도 많다. 누군가 실수로 물만 쏟아도 잘못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 결국 “날 낳은 우리 아부지가 잘못했네”로 귀결되는 듯한, 문제의 원인을 건축으로 몰아가는 안타까운 상황이 나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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