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 연구소장(사진=
김남국 연구소장(사진=김남국 연구소장)

대규모 프로젝트는 기간과 예산을 초과하는 사례가 많다. 실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한과 예산을 모두 지킨 대규모 프로젝트는 전체의 8.5%에 불과했다. 여기에 기대한 효과까지 거둔 프로젝트는 0.5%라고 하니 대규모 프로젝트가 초기 목표를 달성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고 보는 게 옳다. 그런데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이 극히 드문 성공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기한 내에 완공됐고 비용도 300만 달러를 절감했으며 방문객 숫자 목표치(매년 50만명)를 훨씬 뛰어넘는 성과(첫 3년 간 400만 명)를 냈기 때문이다. 이런 성공의 배경에는 건축사 프랭크 게리의 놀라운 프로젝트 관리 능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성공 이유를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 최신호(2023년 1·2월 합본호)가 분석했다.

첫째 성공 비결은 확고한 지휘권이다. 소규모 프로젝트만 수행했던 프랭크 게리가 처음으로 수주했던 대규모 프로젝트가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이었다. 그런데 건축주는 유명세가 없었던 프랭크 게리를 신뢰하지 못했고 그에게 디자인만 해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프랭크 게리의 혁신적인 디자인이 실제 건축으로 구현되지 못해 프로젝트는 10년 이상 좌초됐고 나중에 프랭크 게리가 모든 권한을 갖고 재추진하고 나서야 성공할 수 있었다. 이후 프랭크 게리는 확고한 지휘권을 주지 않는 프로젝트는 진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사진=pixabay)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사진=pixabay)

두 번째 비결은 근본 이유를 묻는 질문이다. 건축주인 스페인 빌바오시 공무원은 시내 중심의 와인 창고였던 거대한 건물을 현대미술관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보통 건축사들은 이런 제안만 듣고 가부를 결정하곤 한다. 하지만 프랭크 게리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근본 이유를 따져 물었다. 결국 해운중심지였다가 쇠퇴하면서 먹고살 게 없어졌기 때문에 미술관이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같은 관광 거점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는 공무원들의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이에 프랭크 게리는 도심 한 복판의 와인 창고가 아니라 강변에 버려진 부지에 대담한 건축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고객이 원한다고 말하는 게 진짜 원하는 게 아닐 수 있다’는 경영학계의 오랜 격언을 실무에 적용한 셈이다.

세 번째 비결은 시뮬레이션과 반복 테스트. 프랭크 게리는 건축주와 아주 쉬운 용어로 혁신적인 콘셉트를 지속적으로 소통한다. 건축주가 좋다 나쁘다 수준의 피드백만 줘도 될 만큼 쉬운 의사소통을 토대로 초기 콘셉트를 잡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시공 전까지 실패나 재시공을 줄인다고 한다. 즉, 콘셉트를 수정할 수 있는 시기까지 이해관계자들과 집중적으로 소통하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사전에 실패를 줄이기 위한 조치들을 강구한 뒤, 시공 단계에서는 수정 없이 밀고나간다는 것이다. 기획 단계에서는 실패해도 비용이 아주 적게 들지만 실행 단계에서는 실패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점을 간파한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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