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준 건축사
윤석준 건축사(사진=윤석준 건축사)

학창 시절 문학 교과서에서 접했던 이상(李箱)의 시(詩) ‘거울’이나 ‘오감도’는 일상적인 언어 체계와 질서를 부정한 난해한 작품이었다는 점을 누구나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시는 ‘언어[言]로 지은 집[寺]’으로 볼 수 있는데,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에서 근무한 그가 만일 건물을 지었다면, 난해한 시를 창작한 시인의 경향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이상(理想)적인 건축물은커녕 볼품없고 안락하지 않은 이상(異常)한 구조물이 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하지만 건축과 문학은 전혀 다른 분야이면서도 구현하는 방식은 너무나 닮아 있다. 건축사가 여러 가지 재료를 이용하여 건물이나 구조물 따위를 세우거나 쌓아 만드는 것과 같이, 작가는 사상이나 감정을 상상의 힘을 빌려 언어로써 표현한다. 주체(건축사·작가)는 객체(재료·사상 및 감정)를 응용(설계 및 시공·언어)하여 예술(건축물·작품)로 승화시킨다는 점에서 건축과 문학의 공통분모는 적지 않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다독(多讀)과 다상량(多商量)의 준비가 필요하듯, 좋은 집을 짓기 위해서는, 어떤 집을 지을 것인지 머릿속에 미리 많은 그림을 그리고 있어야 한다.
루이스 칸(Louis Kahn)은 “건축의 기본은 폼 드로잉(Form Drawing)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한 것처럼, 문학 작품의 기본은 ‘서론-본론-결론’, ‘기-승-전-결’,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과 같은 구조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객체(재료·사상 및 감정)는 전체적인 질서와 조화 속에 배치되어야 한다. 김억중의 저서 ‘읽고 싶은 집 살고 싶은 집’은 건축에 있어 ‘대감의 눈썰미’와 ‘그물눈처럼 짜인 질서’를 강조했다. 문학의 제재를 개연성 없이 나열하면 독자에게 아무런 감흥을 줄 수 없는 졸작(拙作)이 되듯이, 아무리 좋은 건축 자재를 갖고 있더라도 유기적인 짜임으로 구성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될 것임은 불 보듯이 분명한 일이다.

건축은 우리 생활의 공간을 만드는 종합예술이다. 따라서 인간의 아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건축사는 나름대로의 자긍심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한다. 

건축사로서의 삶이 아직은 일천하지만, 건축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크다고 자부한다.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Michelangelo), 일평생 바르셀로나의 성가족교회 건축에 매진한 스페인 건축사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건축사 김수근, 1995년 건축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일본의 안도 다다오와 같이 불후의 명작을 남기려는 건축사의 마음가짐을 초지일관(初志一貫)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건축을 설계할 때 한 세기를 뛰어넘어 천 년의 역사를 빛낼 문화유산으로 남기고 싶은 건축사로서의 신념이 공염불에 머물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하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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