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석 건축사
정영석 건축사

자전적 경험을 어째서 건축사라는 동일직군의 다수에게 권하고 있는가, 하고 돌아보게 된다. 때때로 왜 달리는 것인지 의문을 가져 보기도 하였다. 글로 정리될 만큼 분명하고 구체적인 이유를 찾지 못하였다. 나는 그저 틈나는 대로 달려왔다. 누군가 어떤 이유로 달리고 있는지 묻는다면 ‘유익하다’ 혹은 ‘상쾌하다’처럼 건조하게 대답하며 흐지부지 지나가 버렸다. 이 글은 내가 왜 달리는지 돌아보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돌아봄의 과정에서 작은 유익함이라도 있다면 같은 길을 가는 선후배 동료 건축사들께 권하는 기회를 덤으로 가지고자 한다.

지난여름 지역 건축사들과 함께 대건달(대구건축사마라톤동호회)을 창단하여 함께 훈련하고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지역 건축사들과 함께 달리고 대회도 참가하며 더없이 즐겁고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동호회 활동과는 별개로 나는 이전부터 달려왔다. 10대 후반부터 간간이 달려왔으니 20여 년 정도 소소하게 달려온 셈이다. 내가 그것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순간에는 어김없이 어딘가를 묵묵히 달리고 있었다.

몸이 허락해 준다면 매일 달리고 싶다. 나는 건강을 위해 달리지 않는다. 건강이 목적의 가장 높은 위치에 있었다면 선택지를 더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좀 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아무래도 정신에 관한 것이다. 조금씩 나이를 먹으며 늙는다는 것의 안타까움이 있지만, 여러 경험을 통해 쌓인 스스로에 대한 통계치는 나를 더 잘 알게 되는 측면이 있다. 나는 집중의 지속력이 낮고, 감정 동요가 심하고 부정적 상태에 휩싸이는 경향이 있다. 기질적으로 스트레스가 많아 때로는 견디기 어려운 심정에 놓인다.

건축사가 되어 업무를 시작할 때 각오는 하였지만 경험하고 책임져야 하는 일들이 나에게는 고행이었다. 달리기라는 행위는 짧게는 몇 분에서 길게는 수 시간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일이다. 동일한 행동을 수 천, 수만 번 반복하며 신체에 지속적인 학대를 가한다. 때로는 온몸에서 비명을 토해내며 멈추라고 소리친다. 어쨌든 내 인내가 허용하는 한 거친 숨을 내쉬며 똑같은 행동을 기계처럼 반복한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행위를 계속하다 보면 서서히 현실은 멀어지고 생각은 소멸된다. 나를 감싸고 있던 불순한 감정들이 녹아내렸음을 한 참 지난 뒤에 알게 된다. 때로는 러너스하이(30분 이상 뛰었을 때 밀려오는 행복감. 헤로인이나 모르핀을 투약했을 때 나타나는 의식 상태나 행복감과 비슷)라고 하는 믿지 못할 순간을 느끼기도 한다. 그 순간 짧지만 확실하게 영원을 경험한다.
 

달린다는 행위를 알고 생활에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 인생에 있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점심시간 사무실 인근 공원을 1시간 정도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 거리에 처음 섰을 때 오늘 어떻게 10km를 채울지 암담한 기분이 앞선다. 그러나 일단 달린다. 어떻게든 달리다 보면 끝은 반드시 다가오고 이내 고요한 호수 속에 다다랐음을 깨닫는다. 달리기를 통해 이런 소소한 마법을 매번 경험한다. 땀을 쏟아내고 감정을 씻어내고 깨끗이 몸을 정리하고 지극히 평온한 상태에서 업무를 다시 시작한다.

경우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건축사가 업무 스트레스와 관계의 긴장에서 오는 어려움에 지쳐있을 것이다. 우리는 옳음을 증명해야 하는 고속도로에 놓여있고 패배의 두려움에 맞서야 한다. 나는 그래서 달린다. 불완전한 한 사람으로서 조금 더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다가오는 2023년 전국의 건축사들께 애정을 담아 달리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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