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엄 건축사
김효엄 건축사

‘모든 안전수칙(매뉴얼)은 피로 쓰여 진다’는 말이 있다. 항상 우리가 대비하지 못한 지점에서 사고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제의 크기만큼 또는 안일했던 인식과 현실의 폭만큼, 대가를 지불한다. 이번에는 158명의 시민이 희생되었다. 우리는 모든 위험과 사고에 대비할 수 없다. 그럼에도 꾸준히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방향은 명확하다. 주변 환경이 더 안전해지고, 작업 절차는 실수를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개선되는 것이다. 이렇게 꾸준히 나은 방향으로 진보하는 것은 사건·사고를 통해 교훈을 얻고, 기억해 문제가 되는 부분을 고쳐나가기 때문이다. 

가까운 예로 2016년의 경주 지진과 2017년 포항지진을 들 수 있다. 지진은 시점을 예측하기도 어렵고, 장소와 피해의 범위를 미리 알기도 어렵다. 다행히도 두 지진 모두 큰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 두 차례의 지진으로 건축물을 설계할 때 적용되는 내진설계 기준이 대폭 강화됐다. 그리고 소규모 건축물에 적용되도록 범위도 넓어졌다. 전국 공공건축물들의 내진성능에 대한 평가도 다시 이루어졌다. 특히나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이 사용하는 학교들은 내진성능평가와 보강공사가 지금도 순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어찌 보면 경제와 사회의 발전에 가려져 후순위로 밀려있던 안전에 대한 비용을 지금 지불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난 ‘10·29 참사로부터 무엇을 반성하고 고쳐나가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첫째,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이 모일 경우 상황대처에 대한 매뉴얼이 미비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담당자의 임의판단으로 안전에 대한 대비수준이 결정되어선 안 된다. 전문가의 예측이나 통계 모델로 시간당 최대 집중될 인원을 예측하여야 한다. 규모에 따라 어떤 대비를 하여야 하는지 결정하고, 각 주체에게 의무와 책임을 지워야 한다. 

둘째, 조직의 장이 교체되면 모든 시스템이 리셋 되고, 이전으로 퇴보하는 후진적 관습이 문제이다. 전임자가 잘 만들어 놓은 것은 참고해서 활용하고 불합리한 것은 개선해야 될 것인데 반대편은 적으로 간주하고 타파되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다. 이런 풍토에선 경험으로 쌓아올린 재난대비 매뉴얼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기 어렵다.

셋째, 상명하복의 경직된 조직문화다. 이런 고질적인 문제를 거론하는 것조차 상투적이긴 하지만 뿌리 깊은 문제라 빠질 수 없다. 누군가는 분명 작년과 비교해 핼러윈 축제 대비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상부로 보고된 인원보강 요청은 묵살되었다. 틀린 것을 바로 잡아야 될 모두가 침묵했다. 그 결과로 사고가 발생했다. 

서두에 얘기한 것처럼 발생한 사고를 바탕으로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침통한 마음으로 피로 쓰여지는 매뉴얼의 다음 페이지를 작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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