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건축 설계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정당한 대가지급 등 건축환경 개선 시급
필수인력 이탈에 채용 힘들고, 수익 낼 수 없는 악순환 빠져

‘직업미래 불안’ 젊은 인재 및 기능 전수할 선후배 동료
현장 떠나 ‘존립 기반’ 위협
“직업 비전·미래 밝힐 건축환경 마련해야”
“건축설계 업무대가 현실화 절실…민간 대가기준 마련 필요” 한목소리

“1인 건축사사무소 6,019개소”

건축연구원이 수행한 ‘소규모 건축사사무소 효율적 운영방안 연구(2020년)’에 따르면 국내에 개소한 1만3930개 건축사사무소 중 건축사 1인이 운영하는 곳은 약 6,000곳(43.2%)이다. 지역별 양극화도 극심해 건축사사무소 수의 절반인 50.2%가 수도권에 밀집됐다.

‘건축서비스 산업 동향과 이슈 2021(건축공간연구원)’에 의하면, 건축서비스산업 ‘건축설계 및 관련 서비스업’의 종사자와 매출 역시 각각 약 64%, 69% 서울 등 수도권에 대부분 몰려 있다. 인력·매출 면에서 불균형이 심하고 취약하다는 얘기다.

또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건축설계 및 관련 서비스업 매출액은 약 8.2조 원으로 전체 매출액의 약 40%가 종사자 50명 이상의 대규모 사업체에 편중됐다. 10인 미만의 소규모 건축사사무소가 업계 94.8%를 차지하는 가운데, 기업 수로 보면 1% 미만의 0.7% 대형 건축사사무소가 매출액 절반 가까이를 창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무소 규모별로 ‘매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현저하고 편중도 심해 소규모 사무소에 대한 맞춤형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대다수의 1인 사무소끼리의 경쟁이 과열되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사실 저가 덤핑 수주뿐이다. 정당하게 일한 만큼 제값받기가 더더욱 어려워지는 셈인데, 실제 민간건축 설계시장 설계비가 대가기준 준수가 의무화된 공공 대비 20%에 그치는 배경이다.

2015년∼2019년 착공신고된 민간 신축건축물 ㎡당 평균 설계비(단위=원)
2015년∼2019년 착공신고된 민간 신축건축물 ㎡당 평균 설계비(단위=원)

건축공간연구원이 조사한 우리나라 건축서비스산업 실태(미국 Barnes Report 기반)를 살펴보면, 2020년 기준 건축설계 서비스업 종사자당 1인당 평균 매출액은 8만 6천 달러다. 사무소 운영경비로 수입의 60%를 사용한다고 계산하면, 남는 인건비는 약 4000만 원에 그치는 현실이다. 이는 매출액 대부분을 창출하는 대형 사업체를 포함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 금액은 더 낮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러한 수치는 한마디로 대부분의 건축사사무소가 사람을 새로 뽑을 여력도 안 되고, 취약한 환경 내에서 눈높이에 맞는 인재를 제때 구할 수도 없다는 얘기다. 1인 건축사사무소 증가와 더불어 저가 덤핑 수주, 건축사사무소 경영 악화, 건축사보 인력난 등 건축업계의 작금 현실은 적정설계비, 제값받기가 어려운 경제논리로 보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건축연구원 김유정 책임연구원은 “적정 대가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고, 사무소를 유지하기도 어렵다. 또한 이로 인해 악화되는 건축사사무소의 경제적 여건에서는 우수한 건축인력을 양성하기도 어려우며, 저가로 형성되는 업무대가는 부실설계·감리를 초래하는 등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전했다.

일한 것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대가로 인한 열악한 환경은 젊은 인재들의 기피현상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타 분야 대비 업무강도가 높고 처우가 낮다는 부정적 인식이 더해지며, 장기적으로 산업구조 기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 기능을 전수할 선후배 동료들이 현장을 떠나거나 예비산업인력들이 현장을 등지게 되는 것이다.

실제 한국건축학교육인증원의 ‘건축사 자격제도 운영에 대한 개선방안 연구보고서(2019년)’에 따르면 2018년 건축학과 학·석사 졸업생의 건축사사무소 및 건축분야 취업률이 전체의 50.9%에 불과해 상당수가 타 분야로 진출하거나 청년 실업 상태에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 작년 건축공간연구원이 전국 대학교 건축학과 재학생 4∼5학년(37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건축서비스산업 분야로 취업을 희망하지 않거나 취업을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로 ‘잦은 야근과 복지 수준 등 전반적인 근무 여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타 산업 분야에 비해 낮은 급여수준’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다. 유튜브에서 젊은이들 사이 건축설계업계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하소연하는 영상이 잇따르는 것은, 건축설계산업이 적정 대가 문제로 유능한 인재 육성과 일자리 창출 등에 어려움을 겪는 현실이 반영된 결과다.

건축서비스산업 분야로의 취업을 희망하지 않는 이유
건축서비스산업 분야로의 취업을 희망하지 않는 이유

건축사와 관계자들에 따르면, 건축사사무소 인력 구하기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이 때문에 직원을 제때 구하지 못해 대다수의 건축사사무소가 프리랜서를 고용하며 일을 소화하는 실정으로, 이들이 받는 급여가 급기야 한 달 1000만 원을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축사사무소를 경영하는 입장에선 필수인력이 이탈한 상황에서 채용이 힘들고, 수익을 낼 수가 없어 더더욱 악순환에 빠지는 셈이다.

A 건축사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프리랜서 몸값으로 일부 직원들이 잇따라 ‘프리 선언’을 하는 상황이다”며 “이렇게 되면 기존 자리를 메울 수 있는 방법이 마땅히 없을뿐더러, 신입 직원으로 채우자니 아직 경험이 부족한 데다 경력 직원을 구하기가 정말 녹록지 않아 프리랜서에 더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대한건축사협회 핵심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건축사사무소가 설계·감리업무를 원활히 수행키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1개 팀(3∼5명)을 구성해 운영돼야 한다는 관점에서 살펴볼 때, 건축사사무소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인력확보와 경제적 여건 등에 대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국민생활과 밀접하면서도 공공재인 건축에 대한 과도한 수주경쟁, 덤핑수주 문제를 해결·방지하고 업무수행 노력·책임에 비해 대가기준이 현저하게 낮은 문제를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체 시장 80%가 넘는 민간건축 대가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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