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민 건축사
정종민 건축사

우리나라 전통마을의 전형(典刑)은 집들이 구릉이나 산 아래 분지형태에 모인 집성촌 마을이다. 발생초기에는 입향조를 중심으로 씨족 집성촌이나 가족성향을 강하게 유지하다 점차 종가를 중심으로 작은 종가, 상민, 천민 등의 위계적 서열로 마을이 계층화되었다. 위계에 의해 분화될수록 반대 성향인 공동체의식은 점점 희박해졌다. 희박해진 이유 중 하나는 지형의 물리적 요인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지형의 물리적 요인이란 분지형태를 띤 아늑한 공간이다. 부지공간의 한계로 종가집에서 분가할 때 멀리 떨어져 살다보니, 교류가 적어지고 타성(他姓)과의 교류가 활발해졌다.

친족들은 자연스럽게 소원해졌다. 그런데도 혈연에 의한 친소주의는 조상의 제사의식을 통해 공동체 결속력은 지속됐다. 따라서 집성촌 마을 안에 사는 다른 성을 가진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며 하나의 공동체로 살았다. 이것이 바로 ‘이웃사촌’이란 개념이다. 이것은 남의 부모도 내 부모로 생각하는, 효를 바탕으로 한 의식세계가 지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한 마을 안에 두 성씨가 비슷한 가구 수로 균형을 이룰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협력도 하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경쟁심리가 작동한다. 마을 안에서 세력이 비슷하면 부작용 또한 컸다. 

이런 전통마을은 주로 풍수지리에 의하여 택지했다. 배산임수(背山臨水)를 기본으로 산의 위치와 계곡이나 구릉안에서 좌청룡과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를 따졌다. 마을을 키(챙이)로 비유한다면, 보통 마을주거지 안쪽 7부나 8부 능선 쯤 ‘명당(明堂)’에 종가 터를 잡았는데, 이곳을 ‘혈(穴)’자리라고 부른다. 이 자리가 마을의 중심을 이룬다. 물론 지형 전체의 중심이란 뜻은 아니다. 집 앞이나 옆에는 채마밭이 있고, 앞쪽에는 넓은 경작지와 냇물이 흐른다. 

종가 뒤 가까이는 사당과 가족묘와 야트막한 동산이 있으며 멀리는 높은 산이 받혀준다. 이 산은 땔감의 주된 생산지이다. 생활의 보조공간은 낮은 동산이나 공터 등 가까운 곳에 비교적 경사도가 약한 곳이다. 약한 경사지에는 밭이나 과수원이 조성되었으며, 근동(近洞)사람들의 휴식공간이나 조상의 묘자리도 자연스럽게 조성되었다. 이런 공간에서 수백 년 공동체생활을 하면서 혈연이나 다름없는 이웃사촌으로 살아왔다. 

이런 요소들을 현대에 와서 살펴보면, 마을공동체의식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기 위한 소통의 장소였던 셈이다. 선조들의 지혜와 삶에서 오는 혜안이 놀랍다. 그러므로 현대건축에서 전원마을을 조성할 때, 건축사들이 이런 장점들을 분석하여 설계에 반영하면 보다 의미 있는 전원마을이 만들어 질 것이 확실하다. 

경사지가 약한데도 부지를 마치 평지처럼 깎아 높은 옹벽을 세우고, 획일적으로 택지조성을 해 놓은 것을 보면 아쉽다. 단지(團地) 안을 전통마을처럼 옛길을 찾아 친수공간인 소규모 생태연못도 만들고, 정자와 더불어 정자목도 심어 의도적으로라도 지선과 곡선을 살리면 좋겠다. 선조들이 자연스럽게 그랬듯이. 전통의 삶이 녹아있는 전통마을의 옛 정서를 살리면서 현대의 공법도 곁들인다면, 훌륭한 전원마을 조성이 될 것으로 믿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후손들이 또 이어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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