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욱 건축사
최형욱 건축사

어릴 적 살던 지역의 모습은 듬성듬성 건축물이 있었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기능에 충실한 건축물이 빽빽하게 들어서더니 어느 순간 더 이상 건축물이 들어설 곳이 없어졌다. 그러다 최근에는 20~30년 전에 지어진 건축물이 하나 둘 해체되고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서고 있다.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서기 위해서는 기존 건축물을 해체해야만 한다. 건축물의 해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이란 말이 있다. 호랑이가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건축물은 무엇을 남기는가?

건축물은 남겨지는 것 하나 없이 소중했던 추억의 공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례로 어릴 적 살던 곳 인근에는 대형마트가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더위를 피하기 위해 잠시 들러 300원 짜리 음료수를 사먹던 그 대형마트가 1년 전쯤에 사라졌다. 나의 유년시절을 함께한 추억의 공간을 더는 만날 수 없게 됐다. 건축물이 사라지니 추억의 공간도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이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의 흐름과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다변화하는 시대이다. 지금도 그 누군가에게 추억을 만들어주던 건축물들이 쓰임을 다하거나, 새로운 요구를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건축사들은 새로운 옷을 입혀서라도 그 자리, 그 곳에서 추억을 함께 공유하고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심지어 그것이 우리의 고유 업무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이를 위해 우리 협회의 노력이 필요하다. 2022년 올해는 건축사 의무가입이 제도화되고 시행된 해다. 의무가입을 시작으로 건축사들에게는 공공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국민들이 추억하는 공간, 장소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기존 건축물에 새로운 옷을 입히려는 작업도 전문가의 안목으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런 작업이 우리 건축사들의 고유한 업무가 되도록 대한건축사협회가 힘을 더해주었으면 한다.

이에 앞서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는 용어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지면이나 방송매체를 통해 전달되어지는 건축가, 건축인 등은 의무가입이 이뤄진 지금, 우리 건축사를 표현하는 적절한 용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건축사 스스로의 노력도 당부하고자 한다. 건축사라는 용어를 우리 건축사들끼리만 알지 말고 모든 사람들이 알도록 필자와 함께 ‘알리고 쓰면서’ 대중화에 앞장서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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