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그마

- 허연

저지른 적 없는 일에 대해서
입자들의 소나기에 대해서 고민한다
확실히 우리는 성공적인 종(種)은 아니었다

오지 않는 자멸에 대해 생각한다
팬케이크 위에 앉아
우리가 남긴 잔해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의 모든 자멸을 합친 것보다도 밝게 빛날
그 별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가여운 것들과 
패한 것들과
우리가 용서하려 애쓰는 것들에 대해
불은 말해주지 않는다
불은 전망하지 않는다

우리는 기억이다


- 허연 시집 ‘오십 미터’ 중에서/ 문학과지성사/ 2016년

시인들은 때로는 당연한 것을 당연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투덜댄다. 이유는 당연하다. 상태가 안 좋거나 취했기 때문이다. 불이 무슨 말을 하며, 불이 무슨 전망을 하겠는가? 이 당연한 말을 진술해 놓은 문장은 우리에게 굉장히 못마땅한 듯 읽힌다. 그러나 그 다음에 오는 마지막 행 ‘우리는 기억이다’에 오면 ‘저지른 적 없는 일’이 왜 그렇게 문제가 되는지 알게 된다. 없는 기억이 기억이 되는, 그래서 모든 것은 불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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