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도 잘못이다

- 윤제림


춘계 전국야구대회 1차전에서 탈락한 
산골 중학교 선수들이 
제 몸뚱이보다 커다란 가방을 메고 지고, 
목련꽃 다 떨어져 누운 여관 마당을 
나서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저마다 저 때문에 졌다고 생각하는지 모두 고개를 꺾고 말이 없다. 
간밤에 손톱을 깎은 일도 죄스럽고, 
속옷을 갈아 입은 것도 후회스러운 것이다.

여관집 개도 풀이 죽었고,
목련도 어젯밤에 꽃잎을 다 놓아버리는 것이 아니었다며 고개를 흔든다.

봄은 미신(迷信)과 가깝다.


- 윤제림 시집 ‘새의 얼굴’ 중에서/ 문학동네시인선/ 2013

어느 해 고산(孤山) 윤선도는 양주에 홍수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수재민을 구하겠다는 좋은 마음이 아니라, 그냥 그 광경을 한 번 보기 위해서 해상의 선비답게 배를 몰아 한강을 타고 거슬러 올라 양주에 도착한다. 그는 거기서 모든 것이 물에 잠긴 풍경 속에 우뚝 홀로 선 봉우리를 본다. 그 봉우리가 어떤 봉우리인지 모르겠지만 이 경험이 그의 호 ‘고산(孤山)’으로 남는다. 풍경은 가까이서 보면 지옥이고 멀리서 보면 천국이다. 아무리 어린 선수라도 패배는 얼마나 쓰리겠는가. 그걸 관조하는 눈은 그 패배가 나중에 어떤 것이 될지 잘 아는 눈이다. 지금은 모르는 것들이 있다. 그걸 지금 알아봐야 소용없는 것들이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야 그게 뭔지 알게 될 것이다. 지금은 괴로워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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