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석 건축사
김수석 건축사

한국에서의 지속가능한 건축은 공조설비와 단열성능에 의존한 공학적인 수치 맞추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덥든 춥든 일단 냉난방기를 틀고 보자는 식의 1차원적 숫자 맞추기식 친환경 규제들이 과연 건강한 거주공간 조성에 도움이 되고 있을까? 평균 기온 33℃, 평균 습도 80%에 육박하는 한여름 서울 도심에서 냉방부하는 열원으로 남아 빌딩 숲에 갇히게 된다. 그 열원은 다시 실내로 유입되어 과공조를 유발한다. 에너지 절약은 커녕 에너지 소비만 유발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반복된다. 안타깝게도 국제지속가능건축포럼 PLEA에서 쏟아지는 수백 편의 논문들에서 한국처럼 공조설비로 지속가능한 건축을 실현했다는 사례는 찾을 수 없다.

건물의 에너지 성능을 좌우하는 건물 주위의 미시기후(Microclimate)가 시시각각 변하는 한, 애당초 공조설비에 의존해서 친환경 건축을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난센스다.
건축학의 오랜 학문 분야인 Sustainable Architecture(지속가능한 건축)란 건축의 형상(Forming), 재배치(Re-arrangement) 등 건축적인 방법론을 통해 최적의 Thermal Mass를 보장하는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 목적이다. 옷으로 치면 개인의 체질과 체형에 맞게 옷의 재질을 선정하고 디자인하는 것이다, 채를 통해 불순물을 걸러내는 일종의 오버홀(Overhaul) 개념이다. 한국의 에너지 인증처럼 공조설비만 틀어대는 1차원적인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과설계로 치부되는 패시브 하우스가 국내에서는 최첨단 친환경 건축으로 인식되고 있으니 한국에서의 Sustainable Architecture 분야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서울과 같이 연교차가 큰 도심지에서 가장 효과적인 어반 쿨링(Urban Cooling) 방법은 보이드 형성, 저층부의 비워냄 및 녹지 증설뿐이다. 유럽 도시에서의 보이드는 고정된 용도보다는 장소성의 변화에 따라 변형될 수 있는 여지를 두는, 일종의 다음 세대를 위한 공간적 여백 제공이라는 철학적 관념이 도시구조에 반영된 결과다. 이러한 관념에 충실하다보니 건축의 볼륨이나 파사드에서 독단적인 형태가 도출될 수 없다. 기괴한 형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건축보다는, 주변부와의 소통을 정체성으로 삼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한국과 유럽의 도시풍경이 다른 결정적 이유다. 이러한 관념은 파사드의 물성에도 반영되어 공학적인 지속가능성도 자연스럽게 담보하게 된다. 극도의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현대 건축이 점차 시스템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Breathing Architecture, Building Respiration 등의 용어로 통칭 되는 ‘숨쉬는 건축’은 시스템 건축에 기반한 Sustainable Architecture(지속가능한 건축)에서 중요한 화두다. Adaptive Architecture의 방법론 중의 하나로 외피에서 Movable Device, Facade Ventilation In-Let 등의 건축적 장치를 통해 자연적인 순환 시스템을 구현하는 것이 목적이다. 외피와 매스의 움직임에 기반하여 미시기후에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에 쾌적한 거주환경 구현에 직관적인 방법론이다. 더블 스킨에 대한 건축법적 개념 정의도 전무한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지만, 디테일 구현에 대한 능동적인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아열대로 가속도가 붙고 있는 한국의 미래 기후 환경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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