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대조직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기업구조도 그렇고 국가 정책도 마찬가지로 대조직 중심의 규모경쟁력에 기댄다. 건축과 건설을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이를 진두지휘하는 국가철학도 그렇다.

그러나 이런 전략이 모든 분야와 사회 전체적으로 유용하지 않다. 건축설계산업이 대표적이다. 국제경쟁을 하는 건축설계산업(이하 건축사사무소) 기업들은 중소상공인 규모가 태반이다. 주지하다시피 건축설계는 고부가가치산업으로 클라이언트 의뢰에 의해 매출이 발생되는 지식기반 컨설팅 분야로 볼 수 있다. 생산성 고도화 또는 기술집약의 첨단화라는 매력적인 구호에 건축설계산업을 포함시키는 것도 대한민국 건축설계정책에 대한 국가·사회적 시각이다.

아쉽게도 이런 산업구조가 해외에도 전개될 가능성은 극히 적다. 건축은 문화이며 동시에 기술이 작동하는, 말 그대로 인문·과학이 만나는 접점의 학문이며 실무산업이다. 국내에서 아무리 대형 건축사사무소를 키워 해외 진출을 한다 해도, 문화와 브랜딩개념으로 영업되는 건축설계산업의 특성상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미국의 대형 건축사사무소인 SOM이나 KPF 등이 단지 고도 생산성과 첨단화로 건축설계수주를 하진 않는다. 그런 프로세스와 기술적 생산성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들의 핵심 마케팅 전략이 아니다. 여전히 세계적 건축사사무소들은 디자인을 매개로 한 문제해결 능력을 무기로 삼는다.

이런 장황한 산업 환경을 설명하는 이유는 중소기업중심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는 건축설계산업구조에 대한 개선점·지원을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기업 또는 중소기업수준의 인력구조를 가진 건축사사무소들의 질적 개선을 위해서는 업무환경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개선노력이 적극 필요하다. 왜냐하면 건축설계산업은 건설의 출발점이 되는 계획과 설계를 리드하기 때문이며, 파생된 건축 소재 산업과 각종 부자재를 선별하는 지휘산업이기 때문이다.

소기업규모 건축사사무소들도 대형 건축을 얼마든 설계할 수 있다. 설계 데이터만 충실하다면 현 체제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며, 이런 정량적이고 기술적 업무의 생산성 고도화는 건축사들에게 기획과 창의성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할 수 있다. 때문에 설계데이터를 국가적 차원에서 구축한다면 설계에 따라 시장확대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된다. 건축 관련 각종 산업재들이나 제조기업들의 판매루트로도 활용될 수 있다.

설계데이터센터가 단지 건축사사무소의 업무편의를 위한 장치가 아니라 새로운 국가산업 해외 진출 창구로 정해질 수 있다. 메타버스니 4차 산업혁명이니 하는 초스피드 생산성 시대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국가지원의 설계디테일 데이터 센터인 것이다. 클라우드 기반의 이런 설계 데이터 센터가 생긴다면 1인 건축사사무소가 미국에 오피스를 설계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부수적으로 국내 건축자재기업의 수출도 설계스펙에 의해 자동으로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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