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아 건축사
백현아 건축사

건축설계가 직업인 동료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취업 후에도 끊임없이 진로를 고민한다는 것이었다. 필자 역시 그랬다. 타 전공을 가진 친구들은 취업을 하면 삶의 방향성이 정해지고 안정되는 느낌을 받았지만, 나는 끊임없이 진로를 고민하며 20~30대를 보냈었다. 연구직이나 건설사로 이직을 할까, 전공 관련 공부를 더 할까 아니면 아직 늦지 않았으니 전공을 바꿔볼까를 늘 고민했다. 지속적인 공부와 발전이 필요한 전공의 특성도 있었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이 ‘업’이 나를 평생 먹여 살릴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감이 더 큰 이유였던 것 같다.

경력이 쌓일수록 워라밸(work-life balance)의 균형을 맞추면서 평생 이 일을 즐겁게 할 자신이 없어졌다. 돌아보면 매일 조금씩 버티며 살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던 것 같다. 

최근, 다시 마음에 파도가 그치지 않았던 그 시절을 돌아보게 된 것은 학교에서 지도하는 학생들의 고민을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무를 하면서 대학교에서 설계 수업을 병행하고 있는데, 실무에 가깝다고 느껴서인지 학생들은 직업과 관련된 고민을 가끔 털어놓곤 한다. 특히 요즘은 건축과가 5년제로 바뀌고, 건축학부 내에서 건축학과와 건축공학과를 선택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진로 고민이 좀 더 빨리 시작되는 것 같다. 타 학과에 비해 많이 드는 비용부터, 시간 투자가 많은 5년간의 건축학도 생활, 그리고 졸업을 하고 건축학 인증을 이수하고 건축사를 따는 험난한 과정이 건축설계를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의 발목을 잡는다.

건축학과 5년제 졸업생이 설계 업계로 편입되는 경우도 많지 않다. 한 5년제 졸업생은 “남들보다 1년 더 공부해야 하는 건축과를 졸업한 후 3D 업종으로 여겨지는 건축사사무소 취업은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다. 부동산 PF, 금융 등 건축설계 지식과 관련된 타 업종이 인기이며, 건축과 졸업 이후 10년 정도 지났는데 과 동기 가운데 건축사사무소에서 현재 일하는 동기는 없다”며 현재 국내 산업군에서 건축설계의 정확한 위치를 말해줬다. 건축사사무소 대표 A씨는 “요즘 2030은 임금과 근무 여건에 대해 과거보다 민감하다”며 “임금이 낮고 근무 여건이 열악한 건축업계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건축업계 인력이 빠져나가는 ‘탈건축’은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 인증제도까지 더해지면서 건축학부를 목표로 했던 학생들도 4년제인 건축공학과를 먼저 고려하고, 건축과를 선택한 학생들도 4학년이 되면 하나둘씩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나 역시 긴 시간 같은 고민을 해왔던 경험이 있어, 재능이 반짝이는 학생들에게도 건축사라는 직업의 장밋빛 미래를 말해주기는 어려웠다. 다만, 험난한 길을 거쳐서 건축사가 되고 나면 그래도 전문직이 되며, 정년이 없고, 창업비용이 적어 개업 후엔 자신이 주도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장점을 말해주었다. 

우수한 인재들은 이미 건축학과를 피하고 있다. 또한 개정된 건축학 인증제도로 5년제 미만 건축학과 졸업생의 시험 응시자격 박탈이 현실화 되자 4년제, 전문대학, 기술고등학교 졸업생들이 건축설계 분야로의 취업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이로 인해 설계 업계는 인력난을 겪고 있는 실정이며, 인력난은 산업 경쟁력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 자명하다. 더 늦기 전에 학계와 건축설계 업계가 모여 현명한 해결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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