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연 건축사
유기연 건축사

어느 날 갑자기 건축사신문에 올릴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제안을 받고 “글을 써본 지가 얼마나 됐을까?” 자문해 봤다. 글을 써본 지도 오래됐지만, 그것도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는 신문에 내 글을 싣는다는 게 왠지 모르게 설렌다. 그리고 늦은 시간 사무실에 홀로 앉아, 편안한 음악과 따뜻한 차 한 잔을 연료 삼아 시작해 보려 했다. 물을 데우고 머그잔에 물을 따른다. 머그잔에 새겨진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건축사는 우리의 삶을 디자인 합니다’
사무소를 열고서는 잘 될 것인지에 대한 걱정에 전전긍긍하던 중 선배 건축사의 조언으로 건축사협회를 가입하게 되었고, 가입 후 여러 가지 가입 선물을 받았다. 그중 하나가 이 머그잔이다.

“내가 누군가의 삶을 디자인한다고?” 학창 시절부터 오랫동안 간직했던 빛바랜 물건을 창고에서 발견한 느낌이다. 그리고 다시금 이 문구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건축사는 이 문구의 내용처럼 아름다운 직업이긴 하지만, 질기도록 고된 직업이기도 하다.

수많은 직업 중에 힘들지 않은 일이 없다고 하지만, 건축설계는 그간의 노력이 결실을 보기까지 무척이나 힘들고 오래 걸리는, 가성비 측면으로 봐도 가장 낮다고 해야 할까? 땅의 모양도 제각각이고 지역마다 법규도 다를뿐더러 수많은 용도, 건축물의 규모에 따른 다름과 까다로운 요구사항, 계획에서부터 공사 현장에 이르기까지 넘어야 할 산들이 끝없이 있다. 지금의 나의 위치를 생각해 보면 어디까지 와있는지도 모르겠다.

한 해를 돌이켜보면 설계비와 사무실 운영비를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각을 좀 더 넓혀 생각해 보면, 세계적인 거장 안도 다다오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건축에 의해 조금씩 움직일 수 있다고 했고, 르 코르뷔지에는 집을 살기 위한 기계라 하여 효율적인 시스템의 중요성을 말하지 않았던가!

또한 요즘에는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등 세상의 변화에 발맞추어 공간 변화가 필요함을 여러 분야에서 인지하고 변화되고 있다. 하물며, 불특정 다수가 분양받는 아파트 평면의 경우도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건축사는 우리의 삶을 디자인 합니다.’ 이 문구가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루틴처럼 움직이는 설계 작업들과, 사회적으로 느껴지는 건축사의 위상이 그다지 좋지 못하기 때문 아닐까?

언젠가 이 문구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날이 올 것이라고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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