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근 건축사
김홍근 건축사

2007년 4월에 입주를 한 후 16년 만에 이사를 한다. 1996년 개업 후 이미 3차례의 이사를 경험했지만 2007년부터 현재까지 머물렀던 공간은 건축사로서도 일반인으로서도 긴 시간을 함께한 셈이다. 오랜 기간 안주는 교통이 편리하고 주변 환경이 여러모로 무난한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따뜻하면서도 사리가 분명했던 건물주의 성품 덕이 컸었다. 모든 이치가 다 비슷하겠지만 건축과 공간은 특히 나이가 들수록 주인을 닮아 간다. 이전의 결정을 내린 것도 건물주가 바뀌고 난 뒤 건물 전체의 임대 컨디션에 따른 스트레스도 있었지만 결국 새로운 건물주의 관리소홀이 원인이었다.

오랫동안 이용했던 주변 시설과 교통 등을 고려해서 가급적 현재 위치를 멀리 벗어나고 싶지 않았지만 쉽지가 않았다.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데 없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건축사사무소로 써야하는데 하는 마음으로 틈이 날 때 마다 찾아 다녔다. 특성상 손님의 방문이 많은 것도 아니고 상권이 좋은 위치여야 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출퇴근의 불편함과 비싼 임대료를 감수하고서도 어떻게 쓸 만한 공간이 이렇게 없을까? 외형의 특별함은 차지하고서라도 합리적인 평면 구성이 이렇게도 힘든 것일까 새삼 건축사로서 뒤를 돌아보게 된다.

이사는 이별과 비슷한 말이다. 관계든 소유든 물리적 구속이 결국 마음까지도 잡는 게 건축 아니었나? 주차문제로 신경 쓰이던 출입구 앞의 셋백 공간도 하루아침에 이렇게 무덤덤하게 바라보게 하는 게 이사다.

시간이 흐르고, 주인이 바뀌고, 또 용도가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을 찾는 것이 오랜 기간 내 건축이었다. 지금도 내 건축은 여기에 집착한다. 쓰려고 찾아보니 좋은 건축이 정말 없다. 모든 조건을 내려놓은 그저 합리적인 평면만으로도 반가울 텐데….
급하게 변화되는 시간적 문화적 불확실성 속에서,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건축어휘는 엄격하게 고정하되, 변경될 수밖에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여유를 주는 건축이 더 절실해졌다. 다들 디테일, 디테일을 주장하지만 쓸 건물을 찾다보면 결국 뼈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나이 들면 번잡함을 피한다 했는데 오히려 도심을 결정했다. 젊은 직원들의 일상을 핑계하지만 사실은 오랜 나의 희망이다. 노년의 전원을 꿈꾸기도 하지만 시티호텔을 선택하고픈 내 욕심이기도하다. 건물 주변 조그마하게 가꿔진 정원의 고요한 아침 생기도 결정을 도왔지만 주말 웨딩거리의 신혼의 행렬이 마음에 더 와 닿았다. 현관에 매달려 핀 붉은 화분이 정겨워 좋았고 애지중지 아껴 주차된 오래된 웨건이 눈길을 잡았다.

165제곱미터(50평) 남짓 되는 새 사무소 공간은 엘리베이터를 내리자마자 전부가 전용공간이다. 직원과의 관계가 물리적으로 훨씬 가까워졌고 업무적으로 더욱 교감이 빠르게 작동되게 조닝했다. 회의실은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직원들의 리빙 룸이다. 그래서 가장 좋은 위치이다. 설계실은 상상과 집중을 동시에 얻어야하는 공간이지만 가장 긴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공간이기에 쾌적이 우선이다. 건축전문지들도 직원들과 더 가깝게 배치되어 손쉽고 빠르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대표실은 전체를 조율하고 컨트롤해야 하지만 독립적인 집중을 더 염두에 두었다.

자, 또 이렇게 새로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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