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동엽 건축사
추동엽 건축사

“갑자기 늘어난 수도권의 인구로 주거 대책이 시급히 필요합니다.” “어찌하면 되겠나?”
“저, 70년대부터 만들어진 지하 대피공간이 있습니다. 이를 주거로 변경해주면 적은 예산과 최소한의 기간으로 주거 대책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럼, 그렇게 시행해 봐!”
반지하 주거가 만들어진 유래를 알 수 있는 라디오 정치 야사의 한 대목이다.
80년대에 시행된 이 정책으로 지하 공간은 손쉽게 주거로 전용되었고, 이로 인해 자금력이 부족한 서민층과 청년층의 애환이 담긴 ‘반지하’라는 주거공간이 탄생하게 되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통해서 반지하라는 용어는 서구권에도 전파되었고, 지하에 사람이 살 수 있냐는 의문과 함께 영화적 설정이 아니냐는 웃지 못 할 질문도 받았던 걸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현실이었고, 지난 8월 9일 서울 등 수도권에 시간당 100밀리미터의 기록적 폭우가 내려 한 빌라 반지하 주택이 침수되어 일가족 3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보유한 한국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앞서 말했듯이 반지하라 불리는 지하의 공간이 주거 용도로 사용되게 된 시점은 1980년대로, 급격히 불어난 수도권, 특히 서울 지역의 인구 증가에 따른 해결책으로 제시되어 1970년 이후 200제곱미터 이상 건물의 지하층 설치 의무화로 생긴 공간을 전용하면서 이루어지게 된다. 그동안 지하 주거공간의 침수, 화재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하여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곤 했지만, 제대로 된 해결 방안 모색이 부족하다 보니 결국 이런 사태까지 발생한 것이다.

과연 이 과정에서 우리 건축사들의 책임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건축을 배울 때 주거 계획에서는 공간의 쾌적성을 위한 채광, 환기, 급수 및 배수에 충실한 공간 만들기를 배운다. 또한 대한건축사협회에서 말하는 주된 기치가 우리 건축사는 국민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최전선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듯이, 그런 가치를 내세우는 단체의 특성을 살리고자 했다면 이전에 지하 공간의 주거공간 전용이 논의되었을 때 협회는 이에 대한 문제점과 불합리성을 피력하여 이에 대한 논의의 장에서 우리의 주장을 설파해야 했고, 건축사 개개인도 지하가 주거공간으로서 부적합함을 건축주와 상의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큰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은 부설주차장 설치기준 강화로 소규모 주거의 1층 필로티 주차장 설치 불가피성으로 인해 지하 주거를 설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건축사는 주거 건축물에서는 재해 대비책을 상세히 설계에 반영하거나,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 지하 공간이 아닌 보다 안전한 위치에 주거를 위한 공간을 만들 수 있도록 설계에 반영하여야 할 것이다.

모두의 노력과 관심으로 더 나은 생활 공간이 만들어지길 바라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하 공간은 사람이 살 수 있는 주거공간이 아니며, 우리 건축사의 노력으로 편안하고 안전한 주거공간을 만들어야 할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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