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반 시게루 일본 게이오대학교 교수

세계 재해현장 보호시설 설계…“지속가능 건축 위해 ‘재활용’ 선택”
건축사대회서 특별강연, 뜨거운 호응 속 국내 건축사들과 적극 소통

“안녕하세요.”

당대 프리츠커 수상자라는 화려한 수식어보다 전 세계 재난현장 이재민 보호시설 설계자로 알려진 반 시게루가 한국을 찾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이재민들의 대피소 설계와 공급으로 현재도 일주일에 한 번씩 유럽으로 향한다는 그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대한민국 건축사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제주를 방문해 한국어로 반갑게 인사했다.

9월 2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전 세계 재해지역에서의 프로젝트 사례를 소개하며 열띤 강연을 이어간 그는 “피해 복구를 위해 저렴하면서도 빠른 적용이 가능한 자재를 찾다보니 종이 건축을 선택하게 됐고, 여기에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과학적인 구조계획을 뒷받침 했다”고 설명했다. 행동하는 ‘종이 건축’의 세계적 권위자 반 시게루의 주요 강연내용을 인터뷰 형식으로 소개한다.

반 시게루가 2022 대한민국건축사대회 강연에 나서고 있다.
반 시게루가 2022 대한민국건축사대회 강연에 나서고 있다.

Q. ‘건축작품과 인도주의 활동’을 주제로 한 강연을 통해 대한민국 건축사를 만나게 됐습니다. 소감과 함께 근황을 소개해 주십시오.

같은 일에 종사하는 분들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기쁘고 설레는 일입니다. 아름다운 제주에서 대한민국 건축사 여러분들을 만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사람들이 이용하고, 또 좋아하는 건축물을 만드는 일이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라면 저는 당연하게 자연재해나 인류의 욕심으로 일어나는 재해(전쟁 등으로 빌딩과 건축물이 붕괴)를 통해 발생한 이재민을 돕는 일 역시 건축사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작된 활동을 최근까지 이어오고 있고, 현재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발생한 이재민들을 돕기 위해 폴란드 등 유럽 각국을 왕래하고 있습니다. 또 최근 일어난 파키스탄 홍수 피해 이재민들을 돕고 있기도 합니다. 강연이 끝나면 곧바로 파리를 가게 되는데요. 한국의 건축사분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해 아쉽게 생각합니다.

Q. 인류애, 친환경, 재활용, 종이 건축 등의 키워드가 ‘반 시게루’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인이 평가하는 자신만의 건축철학은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는지요.

현지 환경에 맞는 자재, 지역의 기후, 경제조건, 종교 등 그들의 생활환경을 고려하는 것이 건축 프로젝트에서 가장 우선되어야할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대나무 공예로 유명한 일본 오이타현에 있는 박물관은 건물의 천장을 대나무 바스켓이 연상되도록 설계해 지역정서를 반영하려 했고, 박물관 안과 밖이 자연스럽게 연결돼 지역민이 참여하는 다양한 행사가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지산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후지산 박물관의 경우 지하수를 냉난방에 이용해 에너지 절약과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특히 건물은 후지산 모양을 위아래로 반전시켜 가장 꼭대기 층 파빌리온에 도달하면 실제 후지산의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2008년에는 쓰촨성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외국인에게 배타적이던 지자체 관계자들이었음에도 지역민과 소통하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시설 공급에 중점을 두다보니 임시학교를 건축할 수 있게 됐습니다. 5주 동안 9개의 교실을 선보였고, 이들 임시 학교들은 모두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는 자재를 사용했습니다.
 

반 시게루는 이날 '건축작품과 인도주의 활동'이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반 시게루는 이날 '건축작품과 인도주의 활동'이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Q. 국내에서도 이른바 ‘종이 건축’에 관해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방수나 단열, 안정성 등인데요.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합니다.

알바알토의 전시회장 업무를 맡으면서 종이관이 버려지는 것이 아깝다고 여겼고, 후에 이를 재난 현장과 건축에 활용하게 된 것입니다. 종이로 집을 짓는 사람이 없었다보니 모든 것이 새로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 건축물(영구주택) 같은 경우 엔지니어들과 협력하고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인허가를 진행하고, 강도와 종이관의 내구성에 대한 성능을 입증 받고 있는 셈이죠. 종이 건축은 방수만 된다면 강도를 유지하지만, 대중적인 자재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매번 건축자재로 사용하기 위해 관련 허가를 진행해야 하는 어려움, 특정 국가에서는 종이관이 일반화된 소재가 아니어서 인정받기 어려운 곳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Q. 많은 재난 현장에 임시보호시설(대피소)을 건립하셨는데요. 어떤 곳들이었는지 대상지들을 알려주시고, 향후 계획도 밝혀주시면 좋겠습니다.

1994년 르완다 내전 당시 난민들의 상황을 듣고 뛰어들게 된 셈입니다. 실제 현장에 가보니 보호받지 못하는 난민들의 상황은 심각했습니다. 200만 명의 난민이 있었으니까요.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종이박스와 천 조각들을 활용해 임시대피소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는 일본 고베 대지진, 2004년 스리랑카, 2008년에는 앞서 언급했던 중국 쓰촨성, 2010년에는 대지진으로 공항마저 파괴돼 인접국가인 도미니카공화국을 경유해 입국했던 아이티, 그리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 2015년 필리핀 태풍피해 등을 지원했습니다. 특히 동일본 대지진의 경우, 이재민들이 체육관에 모여 있었는데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않아 문제가 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종이관을 활용해 2,000개의 유닛을 만들어 공급했습니다.

재난이 발생하면 도시재건이 이슈가 되고, 그에 따라 빈곤한 이들은 오갈 데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들이 좀 더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마련을 목표로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와 같은 일에 매진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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