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숙 건축사
강명숙 건축사

건축을 언제부터 했는지 거슬러 올라가면 대학교 1학년 때 건축공학과를 입학하고 부터인가? 아니면 중학교 때 미래의 자기 집을 구상하라고 처음으로 평면도를 그렸을 때인가? 그것도 아니면 초등학교 때 우리 집이 구축되는 과정을 일일이 보며 공사장이 놀이터인 마냥 재미있을 때부터 인가? 분명한 것은 40대 후반인 지금도 건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간 중간 건축에서 손을 떼야할 때도 많았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나는 온전히 건축하는 개인이 아닌 가정을 이루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삶을 살다 보니 본의 아니게 건축을 손에서 놓은 적이 있는 것이다. 잠시 손을 놓은 적은 있지만 끈은 놓지 않고 있었기에 지금은 엄연한 중년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건축사로 지내고 있다.

건축의 길을 접지 않고 지금껏 건축사로서 활동하고 있으니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 건축이란 분야는 하루 이틀 접했다고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수행하듯 긴 시간을 버텨 와야 하는 인내의 분야이다. 때문에 스스로도 건축사의 길을 꾸준히 걸어온 것을 대견하게 생각하고 있다. 다만 때론 과연 내 삶이 건축만 하는 삶이어도 괜찮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스무 살 시절부터 진로에 대한 치열한 고민 없이 어건생 (어차피 건축 인생)이었는데 이제 와서 뒤늦은 진로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러던 와중에 제주의 작은 어촌 마을에 있는 오래되고도 작은 돌집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노모가 살던 작은 주택으로 요양원으로 가신 뒤 오랫동안 방치된 집이었다. 집은 비록 작고 남루하지만 그 집이 마을에서 자리하고 있는 모습과 집을 둘러싼 팽나무들, 정겨운 돌담들은 꽤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낡아 허름해지고 사람 손길이 끊긴 집을 ‘나의 역량으로 잘 살려보자’가 시작이었다. 어쩌면 건축 말고 다른 것을 할 수 있다는 시작 말이다.

작은 집의 외형은 최대한 유지하고 공간의 협소함을 극복하기 위해 주변의 자연환경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작업이 진행됐다. 외형은 원래부터 그 곳에 있던 집처럼, 내부는 더 넓고 청량한 제주의 돌담을 느낄 수 있는 집으로 바꾸는 작업 말이다. 

다섯 달간의 돌집재생 작업으로 제주 돌집의 재탄생은 의도대로 되었지만 문제는 내부의 프로그램이었다. 건축사사무소 용도로 처음부터 계획된 곳이라, 특정목적을 가진 사람들의 방문만 이어지는 ‘특정인’에게만 개방된 공간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공간을 구경하고 싶어도 기웃거릴 수만 있을 뿐 건축사사무소로 개조된 이 작은 돌집은 눈에 보이지 않는 담과 같은 폐쇄된 공간에 지나지 않았다. 이 작은 돌집을 좀 더 여러 사람들에게 개방하기로 했다. 그래서 허름하고 낡지만 잘만 고치면 제주 마을에서 오래오래 같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필자는 제주건축연구위원회 소속으로 제주의 마을과 제주건축을 연구하면서 너무나도 빨리 변해가는 제주의 마을이 늘 안타까웠다. 시대의 흐름이라 어쩔 수 없겠지만 낡으면 해체해서 새로 짓는 것이 일상화되고, 바다전망이라면 최대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건물들이 제주의 마을 모습으로 변화되고 있는 안타까움 말이다. 건축사로써 오랫동안 마을에 머물렀던 제주의 돌집을 지금까지 머물렀던 시간만큼이나 앞으로도 더 머물게 만들 수 있다면 참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모습을 여러 사람들과 공유해 나가고자 했다. 공유의 방법을 모색하다 보니 자연스레 건축 이외의 삶이 펼쳐졌다.

건축만 하던 필자가 건축물 안에 여러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모색하고 운영 콘셉트를 정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 작은 돌집은 제주마을을 지향하는 카페를 병행하는 공간으로 선을 보였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 집을 찾아왔고 그 공간을 즐겼으며, 그 집이 있는 고내리를 더 기억하게 되었다. 

제주 돌집 재생 프로젝트는 방치되었던 돌집을 사람들이 다시 찾는 공간으로 변모시킨 동시에 건축만 하던 40대 중반의 건축사에게 다른 일도 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안겨주었다.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