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바닷가 방치된 기존 창고건물 장소성 재발견

최무규 건축사 “제주 북부 한 해안가 풍경에 매료, 장소의 힘 전달하는 매개로서의 건축 고민”

 ‘공백(언터처블 하트)’ ​전체 서측 전경  (사진=노경 사진작가)
 ‘공백(언터처블 하트)’ ​전체 서측 전경  (사진=노경 사진작가)

국내 건축 문화를 이끌 다채로운 건축물들을 선정했던 한국건축문화대상, 해마다 심사위원들의 경탄을 자아내며 시기마다 건축문화를 선도했던 작품들은 주변 환경과 함께 잘 숨 쉬고 있을까? 대한건축사신문은 역대 수상작들을 다시 찾아 그 건축물들의 현재 모습을 살피고 설계를 담당했던 건축사의 이야기를 듣는 기획을 마련했다. 그 세 번째 작품은 2020년 신진건축사부문 대상 수상작 ‘공백(언터처블 하트)’(설계자 최무규 건축사)이다.

“건축사로서 ‘최선’이라는 게 무엇인지 항상 고민합니다. 사실 100%라는 것은 실체가 없는 것이거든요. 프로젝트마다 주어진 예산과 시간이 전부 다르니까요. 선을 그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내가 그리는 이 선 하나가 시공 비용과 기간에 큰 영향을 미치겠구나. 이게 그냥 그려서는 안 되는 거구나.”

건축주의 제안으로 설계가 시작되고 설계가 완성되면 시공을 거쳐 건축물은 완성된다. 건축사는 건축주의 제안을 도안으로 바꾸고 시공사는 이를 만질 수 있는 실체로 바꿔낸다. 이 과정에서 건축사는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전체 남측 전경  (사진=노경 사진작가)
​전체 남측 전경  (사진=노경 사진작가)

건축설계 전문가로서 탁월한 설계를 만들어 내기도 해야 하지만, 그 설계는 제한된 예산과 일정이라는 조건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설계 전문가로서 치열하게 고민하되, 고민의 결과물은 현실 안에서 구현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는 과제. 건축사는 프로젝트마다 이 과제를 놓고 씨름한다.

2020 한국건축문화대상 신진건축사부문 대상 수상작 ‘공백(언터처블 하트)’을 설계한 최무규 건축사(건축사사무소 에스에프랩〔SFLAB〕)는 지금도 매일 이 고민 속에서 하루를 보낸다고 이야기했다. 공백(空白)에도 치열한 그의 고민이 담겨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해안가에 위치한 공백은 그 이름처럼 건축물을 비움으로 제주의 아름다움 그 자체를 담아내고자 했다. 

D동 전경 (사진=노경 사진작가)
D동 전경 (사진=노경 사진작가)

​대지는 제주 북동쪽 해안가 마을 동복리 끝자락에 있다. 유난히 바람이 많던 해안가 언덕에는 두 동의 창고가 무심히 풍경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최무규 건축사는 1982년 지어진 후 이런저런 사연으로 오랜 시간 방치되었던 이 폐허와 처음 만났을 때 그 적막함에 매료됐다고 전했다.

건축사는 필연적으로 선택의 난관을 마주해야 한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새롭게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 말이다. 기존 창고 건물을 재생하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최 건축사는 당시 느낀 폐허가 안겨준 감정을 꼭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그은 선을 통해 새롭게 태어날 이야기는 자신의 느낀 감각을 오늘날을 사는 대중에게 전달한 매개체로서 작동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B동 전시홀 (사진=노경 사진작가)
B동 전시홀 (사진=노경 사진작가)

이곳에서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이 만들어 내는 서사는 장소의 감각을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이 폐허를 다시 오늘을 사는 사람들과 만나게 할 것이라 믿었다.

‘공백’은 4,950제곱미터 부지에 4동 건물로 구성되어 있고, 신축 건물인 2개동을 카페와 베이커리로 활용한다. 전체면적 660제곱미터 규모에 2개 층으로 이뤄진 이 건물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설치미술작가 이광호 씨 작품이 가구와 조명으로 영구 설치됐다. 옛 창고를 리모델링한 2개 동은 갤러리로 활용 중이다.

660제곱미터 규모 첫 번째 건축물에는 국내외에서 호평 받는 미디어아트그룹 팀보이드 작품이 있다. 대칭을 이루는 로봇 팔에 설치한 거울들이 정교하게 기획된 궤적을 그리면서 거울에 비친 또 하나의 현실로 전체공간을 재해석한다. 

D동 홀 (사진=노경 사진작가)
D동 홀 (사진=노경 사진작가)

패션쇼 런웨이를 연상시키는 긴 공간과 그 마지막에 위치한 계단, 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연출하는 공간은 제주 그 자체가 작품이 되는 순간을 의도한 건축사의 작업이다. 두 번째 건축물은 330제곱미터 규모 기존 창고를 그대로 살리고 그 내부에 유리로 만들어진 또 다른 공간이 파격적인 대비를 이루며 설치되어 있다.

최무규 건축사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장소가 가진 고유한 힘을 대중과 함께 나누는데 도움을 주는 건축사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아직도 자신은 하루하루 더 나은 건축사가 되기 위해 실무 수련하는 마음으로 프로젝트에 임한다고 했다. 최무규 건축사와의 일문일답이다.

최무규 건축사와의 일문일답 

최무규 건축사(건축사사무소 에스에프랩 / 사진 황인철 사진작가)
최무규 건축사(건축사사무소 에스에프랩 / 사진 황인철 사진작가)

Q. ‘공백(언터처블 하트)’을 설계하시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원래부터 제주와 인연이 있었던 것인지요?

최무규 건축사(이하 최) : 그렇지는 않습니다. ‘공백’ 설계를 맡으면서 제주와 처음 연이 닿았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저에게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 것이, 이곳이 바로 제주 바다 풍광과 맞닿아 있다는 것입니다. 제주 바다 풍광을 전달하는 역할로서 건축물은 어떠해야 하는가? 건축물 자체가 빛나기 보다는 그 풍경 속으로 안내하는 매개물로서 작용하는 건축물은 어떠해야 하는지 계속해서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됐습니다.

보통 건축물이 지어지는 과정을 보면, 건축주가 건축물을 짓는 이유와 생각했던 건축물의 모습을 건축사에게 설명하고, 건축사는 이를 토대로 시공자가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도면을 만드는 역할을 하잖아요.

‘공백’이 다른 건축물과 다른 점은 이 과정을 건축주와 저(건축사)가 함께 했다는 점입니다. 처음 제안을 받고 건축물이 위치할 장소와 콘셉트를 함께 고민했습니다. 결국 과거부터 있었던 건축물을 다시 꾸미는 방식으로 결정했지만, 사실 이것도 처음에는 결정되지 않았었습니다. 제주 내에 후보지가 세 군데 정도 있었고 저와 함께 한 곳 한 곳 다니며 어디에 지을지, 새로 지을지 기존 건물을 새로 꾸밀지를 정했습니다. 건축주의 제안 자체가 건축물 이름처럼 ‘공백’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지금의 입지로 결정하게 된 이유는? 

공사 모습 (사진=건축사사무소 에스에프랩)
공사 모습 (사진=건축사사무소 에스에프랩)

최 : 햇빛의 방향이었습니다. 지금 공백이 위치한 곳은 제주의 최북단인데요. 이곳에서 바다를 보면 해가 저의 뒤에 위치하게 됩니다. 그렇다보니 제주의 푸른 바다를 등 뒤에서 비치는 햇빛과 함께 온전히 다 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햇빛과 바다빛깔이 말로 표현하기 힘든 조화를 이뤄낸다고 할까요?

Q. 2020년 ‘공백’(언터처블 하트)의 수상은 건축사님께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수상 후에도 ‘공백’에 들르신 적이 있는지요? 

공사현장에서 바다를 바라본 모습 (사진=건축사사무소 에스에프랩)

처음 제주를 찾아 오랜 고민을 거쳐 세상에 내놓은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아 너무 감사하고, 제 설계 경력에 중요한 작품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저는 ‘공백’의 외형은 완성됐지만 제가 전하고자 한 장소의 힘을 어떻게 전달하는 건축물로 자리 잡을지는 아직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곳을 찾는 이들이 만드는 이야기가 모여 ‘공백’의 가치를 함께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저는 설계자로서 어떤 이야기가 모이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중입니다.

Q. 건축설계를 시작하면서 가진 건축적 지향점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최 : “만들 수 없다면 그릴 수 없다.” 제가 설계에 임할 때 항상 염두에 두는 문구입니다. 설계의 완성도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현실적 제약을 벗어난 것이라면 그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더라고요. 설계는 잘 해야 한다. 하지만 설계란 건축주의 제안과 시공 사이에 존재하는 현실적 과정이기에, 실제 지어질 수 없다면 가치를 갖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설계란 기본적으로 건축사가 가진 생각을 펼치는 과정인 동시에 버리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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