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편집을 마무리하면서 대통령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에서 '용산국제업무지구 국내설계회사 참여 협조요청 관련'이란 제목으로 건축단체에 전달된 두 장짜리 공문 사본을 확인하게 되었다.

한 장은 공공기관발주사업 및 용산 국제 업무지구의 건축설계(Concept Design 포함)와 관련하여 관련기관에 국내건축설계회사가 참여할 수 있도록 협조요청 하였음을 알려 업무에 참고하라는 내용이었고, 또 다른 한 장은 '용산 국제 업무지구 국내 설계사 참여 협조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 사본 1부였다.

먼저 국내 건설경기 침체로 관련 업계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을 감안, 민간업계를 위해 이 같은 공식적인 문건을 공적 기관이 발주기관에 직접 전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한민국 건축사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무척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용을 차근차근 읽어보고 문구 하나하나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자하니 이러저러한 수많은 생각이 들게 되었다.

우선 한-미 FTA가 발효된 상황이었다면 국가 공적 기구가 국내 건축설계업계를 위한 이런 공문을 보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협정 내 일반 의무에 해당하는 '내국민 대우(National Treatment)'에 부합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덜컥 들었다. 또 한편으론 이번 사안의 경우 내국인 역차별에 해당되는 사안이니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국내에 지사를 설립한 미국업체 입장에서는 달리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한-미 FTA' 때문에 상황이 복잡해진 것만큼은 사실이다. 이쯤 되니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국내 건축계에서조차 문제점을 지적받고 있는 심의 제도, 특히 디자인 관련 심의는 관계가 없을까? 지구단위계획의 수립 등 수많은 도시 및 건축 관련 법령이나 규정들이 모두 공공복리 목적으로 '간접수용'으로 간주되지 않을까? 개인이 고민한다고 해결될 사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답답해진다. 지난 신문의 한-미 FTA 기사를 보고 많은 문의전화가 왔다. 특히 지방자치단체 건축 관련 부서에서의 문의가 많았다. 어떤 부분이 어떻게 문제가 될 수 있는지 검토는 해봤는지도 모르겠고 상황변화에 따른 구체적인 설명이 절대적으로 부족함을 느낀다.

건축계는 대통령이 장관들 뒤에 죽 세워놓고 서명하는 사진을 보고도 반응이 없다. 향후 별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일까? 혹시 일반인들 모르게 준비해놓은 것이 있나? 아니면 조용하게 준비하고 있나? 그렇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 문제는 사안에 대한 공유가 필요하다. 조용히 준비할 일이 아니다. 위정자(爲政者)의 일방적인 독주(獨走)로 인한 폐해를 우리는 지금까지 수없이 봐왔다. 정보의 공유가 되지 않고 정보의 부재(不在) 상황인 국내 건축계 입장에서 보면 한-미 FTA는 '유명무실(有名無實)'의 결정체일 뿐이다. FTA 체결 전 실(實)보다 득(得)이 많도록 철저한 점검을 못했다면 향후에 진행될 MRA 협상에 전국 건축사들의 대의를 모아 제대로 임해야 한다. 한의학에는 '통즉불통(通則不痛) 불통즉통(不通則通)'이라는 원리가 있다. 기혈이 통하면 몸이 안 아프고, 안통하면 아프다는 말이다. 소통(疏通)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사실 한-미 FTA와 관련, 건축사 입장에서 신경써야할 부분은 건축의 본질에서 약간 벗어나있다. 바로 계약과 관계되는 부분이다. 법무 서비스 시장이 개방됨에 따라 크고 작은 미국 로펌들의 국내 진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그동안 관행적으로 작성되던 부실한 계약서와 계약방식 자체가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설계계약은 설계자와 발주자 간에 가장 강력한 구속력을 갖기 때문에 계약자들은 모두 매우 신중해야 하는 부분이다. 설계품질의 확보를 위해 미국은 설계도면의 작성, 작성된 도서에 대한 책임 등에 대해 구체적인 지침을 통해 관리, 운영하고 있지만 국내에는 계약된 설계도서의 설계품질 확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 않으며, 전문변호사를 통한 건축설계서비스계약이 대부분 이루어지는 미국과는 달리 건축주와 건축사 간에 주로 '갑'과 '을'이라는 식의 단순계약이 체결되고 있다. 미국과는 달리 건축사의 업무범위, 각각의 서비스 업무들에 대한 책임범위 등이 명확하게 명기되지 않아 분쟁 발생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행태가 지속된다면 미국 로펌 입장에서 국내시장은 속된 말로 '물 반, 고기 반'인 상황이다. 조속한 대책 수립이 절실한 부분이다.

2011년도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데스크로 날아든 공문 한 통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 날이었다.

다가오는 2012년은 영과후진(盈科後進)의 한 해가 되길 기대한다.

※ 영과후진(盈科後進)
: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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