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좌정할 자리를 정하면, 다음은 집이 무엇을 향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상식적으로 말하면 좌향은 정반대로서 좌위가 정해지면 향위는 저절로 결정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좌위는 주체의 건물이 어디를 등지고 앉혀졌느냐 하는 것을 살펴보지만, 향위란 “무엇을 보고 있게 만드느냐” 하는 문제를 따진다. 집(건물) 앞에 서서, 앞 건물(행랑) 너머로 바라보이는 장면이 향위인데, 행랑채가 똑바로 놓였는지 혹은 어느 정도 비뚤어졌는가 하는 정도에 따라 앞의 경관의 축이 변한다. 이 대목에서 영남학파인 남인들과 기호학파인 서인들의 견해가 달라진다. 남인들은 주리론자로서 안채, 사랑채, 행랑채 건물이 줄 바르게 나란히 놓여야 한다는 것이고, 서인들은 주기론자로서 안채는 좌를 중심으로 배치하고 사랑채는 향을 중시함으로 건물이 약간 비뚤어져도 상관이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선종 사찰들은 이와 같이 네모꼴로 배치된 듯 보이지만, 거의가 똑바로 놓인 건물이 없다. 민가에서는 이런 경향이 심하며, 양반 주택이라고 할지라도 영남의 남인들 집에서만 이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 남인의 집-거촌리 쌍벽당

집의 향은 툭 터진 원경을 좋아하지만, 반드시 근경과 중경 그리고 원경이 모두 갖추어야 바람직하다. 근경은 담장이나 행랑으로 자기 집안에 있을 것이고 중경은 ‘案(책상 안)’이라고 해서 통상 ‘안산’이라고 부르며, 원경은 ‘조(朝)산’이라고 부른다. 멀리서 아침 조회하듯 배열해 있다는 의미이다. 향위의 켜는 많을수록 좋겠지만 대개 근, 중, 원경의 3개면 족하고, 5개의 켜 정도면 너무 훌륭하다. 이것이 미약할 때 인위적으로 근경과 중경을 만들기도 한다. 여기에 너른 물이나 들판이 펼쳐지면 금상첨화이다. 너른 물이나 들판은 수평적 시각 요소로서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 집을 연상시킨다.

▲ 완주 화암사 배치도

진산은 깊은 것을 최고로 치지만 조산은 빼어난 것을 높이 평가한다. 특히 ‘문필봉(文筆峰)’이라고 해서 산봉우리가 삼각형으로 뾰쪽한 형을 좋아한다. 서울의 남산(조산)은 성안에서 보면 붓처럼 보이므로, 서울에는 과거에 합격하는 사람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이를 ‘목(木)산’이라고 해서 집의 행랑인 수평(긴 지붕)의 토(土)너머 원경으로 받쳐두는 집이 많다.

건축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집 가운데 하회의 병산서원이 있다. 만대루에 오르면 사방이 확 트이고 앞에는 휘돌아 가는 낙동강 물이 깊다. 그러나 그 앞은 병산이 꽉 막혀 있어서 조금은 답답하다. 이런 느낌을 상쇄하기 위해 중간에 중경을 두어 앞산을 원경으로 바라보는 것인데, 이것이 일제 때 송진 공출로 말미암아 방사(防邪)인 노송 숲이 없어져서 더욱 그렇게 보인다. 최근에는 새로 심은 나무가 제법 자라서 조금은 낫지만, 일제 때 찍은 사진의 노송 숲만은 못하다.

▲ 병산서원 만대루에서 바라본 앞의 병산

집(마을)의 중경인 안산에는 조그만 정자를 세워서 동네 사람들의 휴식 장소도 되지만, 외지인인 들어오는 것을 감시하는 역할도 한다. 동네 앞에 안산이 없으면 개울을 따라 나무(고목)를 심어두고 정자를 세우기도 한다. 제주도 같이 개울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인 경우에도 (궂은)물통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서 낭굽(나무 밑 둥)에 평상을 둘러 사람을 모이게 하기도 한다.

▲ 제주 성읍 노더리방죽

조산은 원경으로 멀리 보이는 산의 실루엣인데 산봉우리들이 나를 향해서 조회하듯 달려오는 것을 좋은 것으로 친다. 이 산들이 오행으로 따져서 서로 상생인 것이 좋고 상극인 것은 나쁘다고 판단하는 것은 전문가의 영역인데, 디자인의 감각을 분석해 본 것뿐이고 그저 맘에 들면 가장 좋은 것이다. 예를 들면 서울의 남산은 목(木)산이고 관악산은 화(火)산이며 인왕산은 금(金)산이다. 나무와 불은 상생이지만 쇠는 상극이다. 따라서 남산과 관악산을 앞으로 겹쳐 두는 것은 좋지만 나무와 쇠를 동시에 앞으로 두는 것은 좋지 못하다. 아마도 디자인 요소의 중복이라고 봤던 듯하다.

▲ 제주 명월대(제주도, 제주의 문화재,1998)
▲ 겸재의 인왕산도(네이버 지식백과)

그러나 제일 나쁘다고 판단했던 것은 규봉(窺峰)이다. 산너머로 뒷산 봉우리가 엿보듯 기분 나쁘게 서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제주도 성읍(정의골)에 동헌 앞 지평선 너머로 멀리 표선 해안의 매봉 봉우리가 엿보고 있는 것이다. 필경 고을 원님은 이것을 ‘고을 아전이 사또를 능멸하는 형국’이라고 해서, 지평선에 큰 성벽을 쌓아서 엿보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나는 20여 년 전에 직접 답사를 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어쩐 일인지 찾을 길이 없었다.

▲ 향단 원경(문화재청, 향단, 1999.12)
▲ 규봉(북한산 보현봉)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