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발주, 2종 중급 계약 후 2종 상급 도서량 제출 요구
설계변경에 따른 적정대가 미지급 사례도 빈번
설계 난이도·추가업무에 따른 대가 증액 적용 외면까지
협회 “기재부 계약예규 개정 등 불공정 행위 차단 보완책 마련”

공공발주사업에서의 상급도서 작성 요구가 빈번하게 이뤄지는 등 발주처 불공정거래 사례 발생에 대한 대책 마련의 목소리가 높다. 불공정 거래가 계약체결단계부터 준공 후까지 이어져 대책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서울시에서 건축사사무소를 운영 중인 A 건축사는 지난해 공공발주 설계공모에 당선돼 2종 중급 계약을 했지만 2종 상급 도서 수준을 납품해야만 했다.

또 대규모 사업계획으로 용역을 발주한 후 설계과정에서 사업계획을 축소하는 일도 있었다. A 건축사는 “설계자 선정 등 계약과정에서부터 설계비가 삭감되는가 하면 용역기간과 용역범위 증가로 설계비 인상요인이 발생하지만 그에 따르는 비용지급은 거부하는 일도 있었다”면서 “특히 제2종 중급계약을 했는데 제2종 상급의 도서량을 요구하는 부분은 발주처에서 당연하다는 듯 별 일 아닌 것처럼 인식을 해 대책이 필요한 형편이다”고 강조했다.

건축공간연구원이 2016년 전문기관에 위탁해 실시한 공공발주 설계용역, 설계 전문가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현업에서 실제로 제2종 중급으로 계약 후 중급 이상의 도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일반적인 것으로 나타났고, 또 이런 문제들이 공공발주 설계업무 대가기준 개선을 위한 선결조건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설계도서는 설계 난이도에 따라 제1종(단순), 제2종(보통), 제3종(복잡)으로 나누고 있으며, 도서의 양에 따라 기본, 중급, 상급으로 다시 세분화하고 있다.

건축공간연구원이 공공발주 설계업무 수행 시 불합리하다고 느낀 사항을 조사한 결과 과업 내용 변경에 의한 업무 증가에 따른 보상 미흡 등도 포함됐으며, 계약에 포함되지 않은 추가 업무의 요구도 빈번한 것으로 확인됐다.

◆ 과도한 설계변경, “보상은 없다”

공공건축 과정에서 건축사들이 고충을 겪는 사례로 과도한 설계변경도 있다. B 건축사는 “이미 결정된 설계에 대한 변경은 물론이고, 복수의 의사결정권자에 의한 설계변경도 잦은 현실”이라면서 “하지만 이에 대한 설계비 인상은 없는 입장이라 울며 겨자먹기 심정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B 건축사에 따르면 “실시설계 시 변경 또는 발주처 요구에 따른 설계변경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을 발주처에서 요구하는가 하면, 정의가 불분명한 ‘경미한 설계변경’에 대해 설계자가 무상으로 업무를 수행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면서 “또 심사가 늘어나면서 공사비가 상승하는데 공사비 증액을 막기 위해 면적을 줄이고 설계비 인하를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등의 사례도 있다”고 소개했다.

공공건축 심의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는 C 건축사는 “결국 각종 심의가 설계변경을 요구하게 만들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고 진단하면서 “자문으로 끝나야 할 심사들이 구속력을 가져 설계변경을 이끄는 단초가 되지만, 설계비 인상에 관해서는 다들 무관심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만큼 설계업무와 관련해서는 의사결정 구조가 단순해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심사가 늘어나는 것은 행정당국이 책임을 피하기 위해 절차를 늘이는 구태의 전형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C 건축사는 “추가업무·기간 연장·설계변경에 따른 설계비 미반영 등 다수의 불공정 사례들이 발주처 우위의 계약으로 인해 발생되는 모습”이라면서 “설계변경의 개념, 사유, 절차와 방법, 설계변경에 따른 계약 금액의 조정 등에 관한 구체적인 규정 마련이 필요하며, 우선적으로는 발주처와 설계자가 상호 동등한 관계에서 이뤄지는 공정한 계약 문화 확립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한건축사협회 관계자는 “불공정 거래 발생 시 분쟁을 조정·중재하며 피해를 구제하는 등의 지원 기관의 설립이 필요한 상황으로, 협회에서는 건축서비스산업의 불공정한 거래관행 개선과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 그리고 성숙한 계약문화 정착을 위해 공정거래 지원센터 설립과 설립 근거를 마련하는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 이어 “센터가 다양한 표준계약서 개발, 불공정거래 피해 구제(상담 및 법률자문, 소송비용 지원) 등의 업무를 담당할 계획이며, 건축단체가 마련한 공공부문 건축설계표준계약서를 바탕으로 기획재정부 계약예규 개정안 역시 국가건축정책위원회 및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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