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도 운영과정을 들여다보면 종종 본래의 취지를 상실하면서 편법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있다. 건축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2001년 건축대학 5년제 인증 제도가 시행된 근본 이유와 취지를 당시 자료나 정부의 발표를 통해 다시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1999년 국제건축사연맹(이하 UIA)에서 건축사 자격의 국가 간 상호인정을 위한 인증 지침을 마련한 것에 따라 건축전문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5년 이상의 건축 전문 교육, 2년 이상 실무경험과 건축사 자격시험 합격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건축사 자격시험은 약 20여 년에 걸친 조정 유예기간을 두고, 2단계 과정에서 최종 1회 시험으로 변경 실시되었다. 예비시험을 없애면서, 5년제 건축대학 졸업생에게 시험 자격을 부여한 것이다. 즉, 4+1년이 되면서 예비시험을 대체한 셈이다.

최근 특수목적 고등학교나 2·3·4년제 관련 대학 졸업생들이 건축사 자격시험 응시 자격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있다. 거의 20여 년간 준비되지 않던 정책이 갑자기 나올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대책은 무엇인가?

국토교통부와 교육부에 제도의 도입 초기 과정을 복기하고 상기하기를 촉구한다. 현재 건축학 5년제 인증대학은 제도가 확산되기 시작한 2003년부터 현재까지 수배 가량 늘었다. 하지만 5년제 인증대학의 졸업생들은 예비시험 면제라는 혜택을 받고서 실무수련을 지원하지 않는다. 이는 제도 도입만 하고 운영에 대한 정책적 고민이 전혀 없는 제도였기 때문이다. 건축사처럼 일정 기간 수련의 과정을 거치는 전문가 분야 중 하나인 의사를 예로 든다면 의사는 건축사와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지난한 과정을 거친다.

수십 년간 상위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의과대학이지만, 매 학 년 유급률이 10~30%를 넘나드는 등 학년 진학도 쉽지 않다. 그렇게 정제되고 정제되어 졸업해도 인턴과 레지던트 기간이 기다리고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인턴과 레지던트 기간의 수입은 의외로 낮다. 이유는 수련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생하면서 의사가 되려는 치열한 경쟁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의무감? 사명감?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경제적 안정과 우호적인 사회적 평판이다.

자! 그렇다면 건축사를 비교해보자. 5년제 인증으로 등록금을 반강제적으로 1년을 더 내면서 졸업해도 그들의 눈에는 시장경쟁에 치이는 차고 넘치는 건축사들이다. 건축사 자격을 취득한 선배들을 봐도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보이지 않는다. 의사처럼 고생하는 인턴과 레지던트 기간의 수련을 거칠 만큼 건축사 취득 후의 경제적 보장이 없다.

그러니 실무수련자는 건축대학 5년을 졸업하고도 평균 50%를 넘지 못한다. 성공한 교육정책인지, 또 누구를 위한 교육정책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2000년 초반으로 돌아가 보자. 건축학 5년제 인증과 학제 도입 초기 언급되었던 ‘건축사 자격의 국가 상호 인증 지침’을 상기하자. 그리고 학생들의 목표가 될 건축사의 경제적 안정을 고민해 주기 바란다.

가난한 건축사, 전문가들은 경제적 유혹에 약하다. 그러니 감리현장 한번 나가지 않고, 사고의 주범이 되는 것이다. 체벌만 강조되어선 안 된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국가 정책을 다루는 정부와 국회의 무책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무부처인 교육부와 국토교통부가 나서야 한다. 무책임한 관객으로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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