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철 건축사
조명철 건축사

과학을 정의하는 많은 글귀들 중 가장 단순한 것을 고르면, ‘세상이 움직이고 순환하고 작용하는 원리를 누구나 공감하는 체계적인 방법으로 밝혀내는 학문’을 들 수 있겠다. 필자의 지능 수준에서는 요 정도로 설명될 때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 같다. 사전적·철학적·실용적 의미를 단순화하고 보니 기껏해야 한 줄로 끄적일 수 있겠는데, 과학 하는 과정을 무척이나 좋아라하는 이해할 수 없는 과학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지리한 인고(忍苦)가 수반됨을 볼 수 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관찰과 실험…자료와 결과들을 정리하고 분석하고…개념과 가설을 만들고…실증을 통해 이를 다시 검증한다. 그리고 또다시 반복….

과학의 가장 큰 특징은 실험이다. 그런 면에서 건축도 과학을 꽤나 닮았다. 아치(Arch) 시스템에 대한 역사를 살펴보면 건축도 얼마나 과학적인지 알 수 있다. 건축은 인간의 사회적 생활과정에서 생겨났고 함께 성장해 왔다. 보다 안정적인 공간에 대한 욕망의 시대를 지나, 보다 높고 넓은 공간에 대한 욕망은 과학기술의 혁신으로 이어졌다. 돌로 넓은 경간(徑間)과 공간을 만들어 내는 아치 시스템도 어김없는 과학화 과정을 거쳤고, 당시엔 혁신이었다.

아치는 원호를 이루는 꼭대기에 마지막 돌이 끼워지고 목재 거푸집을 걷어내기 전까지는 그 성공 여부를 판가름할 수 없었다. 수많은 시행착오(試行錯誤)가 실험처럼 이어졌다. 착오는 아치 아래에서 거푸집을 걷어내던 사람들의 생명을 요구했다. 수학적 계산과 재료물리학 지식이 부족했던 시대에, 과학적 실험이라고는 생명을 담보로 하는 관찰뿐이었다. 아치구조는 붕괴와 더불어 안정적인 구조로 발전했다. 건축사(史)를 자세히 살펴보면, 건축은 요란스럽고 시뻘건 핏빛 서린 실험을 많이도 요구해 왔다. 아치의 역사만 그러했을까.

현대에는 예측하는 과학이 있다. 실험과 관찰, 시행을 수학적 장치로 시뮬레이션(Simulation) 한다. 착오를 줄이기 위해서이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얻어진 결과값은 실증적인 건축 구현(건설)을 통하여 입증되고, 구조는 더 본질에 가까운 값들을 찾아 지금 이 순간도 과학하고 있다.

“그런데 말입니다”(‘그알’ 김상중)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건축사들은 적잖이, 과학을 외면한다. 조용하다 싶으면 1면 톱기사로 등장하는 해체 중 붕괴사고, 비계구조물 붕괴, 현장 화재 사고 등을 접하노라면, “아…우리와 과학이 남이가” 하는 자성의 탄식이 나온다. 과학의 성질은 ‘객관성’과 ‘합리성’일 것이다. 건축구조는 합리적이지 않으면 존재가 불가능하다. 과학 하는 과정이 만들어낸 개념에 적합하지 않은 구조는 합리성을 잃고 붕괴한다. 그런데 그 합리성이란 것이 우리 건축사들에게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KDS(Korean Design Standard; 한국설계기준)와 KCS(Korean Construction Specifications; 한국시공기준)라는 문서로 제시되고 있다. 우리가 실험하거나 착오가 생길 일도 없다. 과학 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그 기준들이 갖는 합리성을 인식하는 것만으로 족하다.

해체는 건축의 역순인 것이 합리적이다. 비계구조물은 세장한 재료이므로 좌굴을 잡아주면 합리적으로 잘 서게 된다. 건설 현장 내의 인화물질은 불붙는 질(質)이므로 불장난하지 말 것을 합리적으로 요구한다. 그뿐이다. 우리 건축사에게 필요한 과학은 그 수준이면 된다. 그 단순한 과학이 합리성을 조금이라도 잃으면, 아차차…크고 작은 착오가 된다. 오늘날엔 불필요한 착오다.

끝으로, 건축사는 사업자등록증에서조차 ‘과학’이 외면할 수 없는 동반자임을 말하고 있다. 예술도 중요하지만, 피할 수 없으니 과학기술도 즐기도록 하자.

* 참고문헌 : 여영서(2006), “과학이란 무엇인가 vs. 과학은 얼마나”, 과학철학(KJPS). 홍성욱,『과학은 얼마나』,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2013). 함인선,『구조의 구조』, 발언(2000). 함인선,『건물이 무너지는 21가지 이유』, 글씨미디어(2018). 김예상,『건축의 발명』, MID(2020). 마스다 스스무, 『주거해부도감』, 더숲(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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