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는 모든 업무처리를 직접 수행한다. 사무장을 시켜도 무방할 듯한 접수도 변호사가 직접 가야 업무처리가 이뤄지는 시스템이다. 의사도 모든 진료를 직접 한다. 의사가 아닌 간호사나 의료기기 회사 직원들이 수술을 집도하거나 주사를 시술하는 경우는 불법 행위 처분 대상이 된다. 공인중개사 역시 마찬가지다. 보조원의 도움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공인중개사의 매매 부동산 확인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건축사는 어떠한가? 건축사는 정부 주도하에 어떤 전문자격보다도 가장 빨리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시스템을 도입하고 따랐다. 선의에서 비롯된 합리적 순응을 이처럼 잘하는 집단이 또 있을까? 

건축사법에 따라 건축사는 건축사보의 도움을 받아 업무를 책임 있게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업의 특수성 때문인데, 바로 이런 특수성 때문에 수십 년간 건축사 불법 자격대여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는 건축사가 몇백 명에서 수천 명이었던 시절부터, 거의 건축사 양산체제로 들어선 오늘날까지도 마찬가지다.

몇 해 전, 국토부가 대한건축사협회와 건축사 불법 자격대여 현장 합동단속을 벌인 바 있다. 건축사라는 법적 책임을 부여받는 자격이 만들어지고 수십 년 만에 최초라고 한다. 그 사이 우리 사회에서 건축사의 인지적 지위나 위치는 황당할 정도로 혼란스럽다. 자동차 보험을 가입하려고 할 때 직업란에서 건축사를 찾을 수 없고, 인터넷 자동번역기를 돌려보면 대부분의 경우 ‘건축가’로 번역된다. 건축가와 건축사를 혼동하는 대중들이 확대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쯤 되면 우리 사회가 과연 법적 제도 기반의 사회가 맞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이름은 본인이 듣고 싶어 하고 남이 불러줄 때 가치와 의미가 있다. 이런 흐름에서 세움터 또한 불법으로 건축사라는 법적 자격의 대여를 가능하게 만드는 장치가 되고 있다. 세움터는 누구나 접속해서 일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명 사무장 건축사사무소에서도 세움터를 통한 사업 진행이 충분히 가능하며, 건축사의 온라인 공인인증으로 모든 것이 처리된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단속이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

특히 세움터는 독점적 프로그램이라 컴퓨터 환경이 바뀌더라도 배짱 대응으로 일관한다. 일례로 구글 크롬이나 네이버 웨일 브라우저에서도 오류가 수시로 생긴다. 그리고선 별다른 개선 없이 팝업창을 통해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사용하라는 공지를 버젓이 게시한다. 제공사인 마이크로소프트사조차도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프로그램을 말이다. 보안에도 취약하고 안전성도 없는 세움터를 쓰느라 하루 종일 시간을 낭비하는 경험은 국내 건축사사무소 근무자들 대부분이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사안이 됐다.

세움터는 국가 기관도 아니다. 단지 대행사일 뿐이다. 언제까지 국가 업무를 하는데 이런 완성도 낮은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하는가? 또 건축사들은 왜 변호사처럼 당당하게 직접 접수를 요구하지 못하는가? 정부 정책이면 앞뒤 안 가리고 따라가야만 하는 걸까? 그로 인한 부작용이나 문제는 없는 것일까?

왜 건축사들은 이에 대한 반론도 어떤 반응도 없는 것일까? 건축의 완성도 좋고, 아름다운 건물도 좋다. 건축사들의 생존과 권한도 좋다. 하지만 기본적인 출발점조차 정리가 안 된 대한민국 건축사 환경은 개선되어야 마땅하다. 관습법이 강하고 논란도 다양한 서구지만, 한번 법적 제도와 시스템을 구축하면 냉정하리만큼 따르고 준수하는 영국이 이런 면에서는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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