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자·수상건물에 ‘설계자가 누구인지’ 빠져 알 수 없어
정부조차 존중 않는 ‘건축 저작권’ 어떻게 봐야 하나
‘넥스트 프리츠커 프로젝트’ 논하기 전 기본부터 챙겨야
범부처 공공건축사업 체계화 ‘공공건축특별법’ 제정도 서둘러야

국토교통부,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해양수산부 등 정부 각 부처를 비롯 전국 지자체가 각종 공공건축물의 디자인의 차별화를 꾀하며 성공모델을 만들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쏟는 가운데, 정작 성과를 나누는 시상제도에서 건축물을 짓는 일을 계획·총괄하는 작업을 수행하는 주인공, 즉 설계자(건축사)가 배제돼 논란이다.

높은 수준의 공공건축이 있는 곳에 국민 삶의 질도 그만큼 높아진다는 인식하에 공공건축물 저마다 권위의 옷을 벗고 국민들 앞에 선보이고 있지만, 하나의 건물이 완성되기까지 기획·계획·설계·시공·유지관리라는 길고 복잡한 과정 가운데서 고군분투하는 건축사에 대한 배려와 포상이 아쉽다는 지적이다.

국토교통부는 국토·도시공간의 품격 향상을 위한 창조적이고 열정적인 노력과 성과를 발굴하기 위해 2007년도부터 매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공모전을 시행하고 있다. 우수한 공공건축물이 건축사 못지않게 건축주의 의식과 결정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제정된 만큼, 건축주인 공공발주자에게 상이 주어진다.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지방공기업 등이 바로 그 대상이다. 다만 작품마다 좋은 공공건축이 무엇인지 고민했던 정책 결정자, 건축사, 시공자의 합작품이라는 이유로, 응모방식에선 건축사와 발주기관의 공동응모 또는 설계자 추천을 통해 응모를 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최종 심사 후 나오는 수상자 명단 또는 보도자료 수상건물에 설계자는 쏙 빠져 있다.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공모내용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공모내용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도 마찬가지다. 응모신청 때 설계자를 등록하게 하지만, 심사 후 발표되는 수상자 명단이나 수상 건물에 설계자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정부의 이 같은 일 처리 방식은 사실 저작권법에 반하는 것이다.

건축물은 창작물로서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를 받는다. 건축물·건축을 위한 모형 및 설계도서 그 밖의 건축저작물이 대상인데, 건축물의 저작자인 건축사는 저작인격권(저작물에 대해 정신적·인격적 이익을 보호받을 권리)와 저작재산권을 갖는다. 저작인격권 중의 대표적인 법적 권리가 ▲저작물을 공중에 공개할 것인지 결정할 권리(공표권) ▲저작물에 이름을 표기할 권리(성명표시권) ▲저작물의 내용이나 형식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동일성유지권)이다.

저작권법이 창작물을 만든 사람의 노력과 가치를 인정하고, 만든 사람, 즉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마련됐음을 감안할 때, 가장 모범을 보여야 할 정부조차 건축물 창작 저작권자(설계자)가 누구인지에 관심이 없다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을 외면한 처사라는 비판이 뒤따르는 이유다.

한번 짓게 되면 사람의 수명보다 더 긴 세월을 버티는 건축물이 탄생하기까지 건축사의 역할은 결코 가볍지 않다. 건축물에 대한 연구, 조사, 자문, 지도, 기획, 계획, 분석, 개발, 설계, 감리, 안전성 검토, 건설관리, 유지관리, 감정 등의 행위를 포괄하기 때문이다.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이 건축사의 역할을 보다 구체화하여 ‘건축서비스’로 정의한 내용이다. 건축기본법도 ‘건축’을 건축물과 공간환경을 기획, 설계, 시공 및 유지관리하는 것으로 정의하며, 건축사의 직능을 강조한다.

◆“건물 짓기까지 계획·총괄하는 건축사 공인으로서 존중해야”

건축문화 수준 향상을 목표한다면 우리 사회 공공재로서 기능하는 건축에 대한 사회적 인식 범위를 넓히며, 고품질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주체에 대한 성과 보상이 이뤄지고 그 체계가 확립돼야 한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얼마 전 국회 법사위에선 공공재인 건축을 총괄하는 건축사가 타 전문자격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적 역할이 약한 것 아니냐는 ‘웃픈’ 얘기마저 나온 바 있다.

A 건축사는 “우수한 공공건축을 위한다면 무엇보다 정책결정자와 시공자, 관계자 사이에서 디자인과 생애주기 동안의 경제성, 지속가능성, 사용자의 만족도를 위해 건축 전 과정에서 역할 하는 건축사(설계자)에 대한 배려가 우선돼야 한다”며 “프로젝트 총괄조정자로서 막중한 책임을 지면서도 사업이 올바르게 갈 수 있게끔 걸맞은 권한도 주어지지 않을뿐더러 준공식에 변변한 자리조차 없는 현실 앞에선 분노하고 절망한다”고 전했다.

공공건축가인 B 건축사도 “공공재인 건축에 관계하여 실무를 펼쳐 사회 전체가 혜택을 누리도록 하는 건축사 직능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며, 건축사 스스로도 공인이라는 인식을 갖고 윤리적으로 바로 서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국회에서 넥스트 프리츠커 프로젝트나 건축사의 공적 역할을 운운하기 전에 사심 없이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는 직능인에 대한 존중이 바로 설 때 좋은 건축이 나올 수 있고 사회 전체가 혜택을 누린다는 점을 상기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부 부처별로 산재돼 있는 공공건축사업의 시행 과정을 체계화함과 동시에 설계자의 업무범위와 대가에 관한 사항 등 현장에서 제기되는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방안을 규정한 공공건축특별법도 속히 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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