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민 건축사
정종민 건축사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가 주장하는 세 가지 설득 방법이 있다. ‘로고스(logos)’, '파토스(pathos)', '에토스(ethos)'이다. 로고스는 지성 또는 논리, 파토스는 동감과 열정, 에토스는 개인의 성격 또는 성품으로 표현하곤 한다. 로고스란 어떤 논리를 말하는 것이다. 설득할 때 논리정연하게 설명해서 설득에 도달하는 것이다. 파토스는 대화자에게 긍정으로 동조하며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며, 에토스는 대화자가 어떤 사회적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설득의 정도가 달라진다는 이론이다. 이처럼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는 심리학도 필요하고, 서술도 필요하며, 감정이입도 필요하다.

설득력의 한 방편으로 최근에 인문학이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왜 열풍이 부는지 우리는 곱씹어 봐야 한다. 어떤 이는 건축학개론도 인문학으로 분류하려 한다. 이런 맥락으로 볼 때 서양학문은 기초과학이 중심이라면, 동양학문은 자연현상이 기초가 되는 형이상학적 사유의 세계이다. 현대의 과학은 인간의 가치나 존엄, 인간의 본질적 사유의 세계를 무시하거나, 인간을 기계의 부속품처럼 생각하기 쉽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설계는 대부분 공학적 접근이나 기계적 접근으로 풀어나가지 않았나 반성해 본다. 물론 구조는 당연히 공학적 접근이어야 한다. 다만 외피나 내부 마감만큼은 달라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건축설계는 소비자를 무엇으로 설득하여 4차 산업시대에 대비해야 하는가? 그것은 창의력에 의한 감성적인 표현일 것이다. 콘크리트에, 철골에, 벽돌에, 내부 마감에 무슨 감성이 곁들어 있다고 하는가? 소재 자체는 감성적이지 않지만, 우리들의 표현에 따라 느낌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건축이란 지어진 공간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세상을 바꾸고, 대중에게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풍부한 상상력으로 감성적이고도 창의적인 디자인을 실현해 부드러운 이끌림으로 만족감을 선사하는 것이 아마도 감성의 본질이 아닐까? 집은 옷과 같아서 그 안에서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느끼며 살기 때문에 집안, 그리고 일터 공간에서의 정서적인 영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릇이나 의자, 우리들이 설계하는 건축물은 무엇으로 값을 매기는가? 겉포장이나 디자인, 소재 이런 것일까? 이런 것들은 피상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이고, 진정으로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가치를 발견하여 거기에 값을 매긴다고 봐야 한다. ‘가치에 대한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겉을 보고 판단하는 것은 수박을 겉만 핥는 격이다. 다만 복합적인 평가에서 참조의 대상이 된다. 이런 이론들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노자와 장자의 ‘노장사상’ 중 허(虛)의 사상에 해당한다.

노장사상의 키워드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즉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스스로 그렇게 된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사상은 우주가 비어있지만, 사실은 꽉 차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꽉 찼다는 것은 각자 자기 할 일을 스스로 하기 때문에 우주가 순리적으로 변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므로 허의 사상은 마당과 같이 비어있으므로 쓸모가 있다는 역설이다. 그릇이 비어 있지 않다면, 의자의 좌석이 비어있지 않다면, 건물의 속이 꽉 차 있다면 가치의 논의 대상도 안 된다. 비어있으니 그것에 값을 치르는 것이다.

건축물이 보기는 좋으나 기능이 약한, 또 기능만 생각하고 미를 추구하지 않는 건축물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기능·미·구조가 적절하게 어우러지는 건축물을 설계해야 하고, 시공자도 이런 부분을 설계자와 상의하면서 시공해야 할 것이다. 음악이나 미술 등은 싫으면 안  듣고 안 보면 그만이지만, 건물은 안 보고 살 수가 없다. 또 그 안에서 산다. 그러므로 건물의 정서적 영향은 그만큼 크다.

따라서 건축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사회에 기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건축사는 이 점에 주목하고 도시문제, 사회문제 등을 차가운 이성으로 종합적이고도 폭넓게 상상력과 창의력을 활용하여 표현하는 것이 고도의 감각기능이다. 이것이 바로 인문학적 접근이고 감성이지 않나 싶다. 인문학은 결국 문(文)·사(史)·철(哲)이기 때문이다. 건축사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바깥 공간과 내부 공간을 통하여 감성으로 승부한다면, 설계한 건축사도 같이 행복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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