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선 논설위원
함인선 논설위원

철거라고 해서 그냥 부수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참사였다. 광주 학동 재개발현장붕괴사고 얘기다. 해체의 순서와 공법을 짜는 철거 설계는 신축만큼 어쩌면 더 어렵다. 해체 과정에서 취약해지는 건물의 매 단계 별 안정성(stability)을 확보하는 일종의 역설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를 복기해보자. top-down 방식으로 해체하겠다는 계획까지는 좋다. 긴팔 파쇄기(long-boom back-hoe)를 쓰거나 크레인으로 옥상에 올려놨으면 문제없었을 것을 비용을 아낀답시고 경사로(盛土體)를 만들었다. 흙은 고체와 액체의 중간인 액상체이기 때문에 횡압(토압)이 생긴다. 비산방지용 물까지 먹어 더 커진 횡력이 건물을 밀어 전도(overturning) 붕괴가 일어난 것이다.

2019년 7월 서울 잠원동 사고의 완벽한 재현이다. 이때도 경사로의 횡압으로 건물이 도로 쪽으로 넘어져 예비부부 등 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건축물 해체 작업은 허가 및 감리제로 바뀌었고 ‘해체계획서’를 제출해 승인받도록 변경되었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이런 조치가 전혀 실효성 없었음을 극명히 드러냈다.

먼저 해체계획서부터 엉터리다. 리모델링할 것도 아닌데 건물의 강도를 측정한 후 가장 약한 부위부터 철거하라는 엉뚱한 처방을 내리고 있다. 역설계를 통한 해체 순서는커녕 성토체의 횡압 계산조차 없다. 철거 작업자들은 계획서는 뒷전, 자신들의 경험칙대로 진행했을 것이고 할 일 없는 감리자가 현장에 없었던 것도 당연하다.

사고가 나면 언론은 ‘안전불감증’을 되뇌고 정치권과 당국은 규제와 처벌 조치를 내놓는다. 그래서 진즉 사라졌을 법한데 같은 사고가 왜 반복되는 것일까? 사고는 ‘불감증’은커녕 고도로 합리적인 ‘타산적 사고’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이다. 처벌의 ‘비용’보다 위험 감수에 따르는 ‘편익’이 크면 어찌 됐건 사고 날 일을 감행한다.

이번 철거공사비는 현대산업개발에서 한솔기업, 다원이앤씨, 백솔건설을 거쳐 최종 작업자인 아산산업개발까지 이면계약과 재재하청이 이루어지면서 3.3m²당 28만 원에서 4만 원까지 내려갔다. 날림 계획서, 부실감리, 무모한 철거작업이 모두 충분히 설명된다.

통상 재개발 철거공사는 주민 퇴거를 맡은 용역사의 서비스(폭력)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진다. 이번에도 속칭 ‘철거왕’의 회사가 개입했다. 요컨대 안전은 ‘정신승리’의 문제가 아니라 ‘비용’의 문제다. 이 자명한 명제와 산업 생태계의 내부 논리에 반하는 규제와 처벌은 있다손 그것은 ‘선언’에 머문다는 뜻이다.

이번 참사는 관리 사각지대인 중소규모 건설현장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준 사고이기도 하다. 굴착기 소유주이자 사장인 조 모 씨는 원청자 현산은 물론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으며 작업했다. 우리나라의 산재사망은 연 1000여 명으로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인데 그중 50%가 건설현장에서 죽는다. 건설업의 GDP 내 비중이 5%이니 타 산업 대비 10배 사망률이다. 더욱이 이 중 공사비 120억 이하 현장이 74.3%, 20억 이하가 53.8%다. 연면적 1000㎡ 남짓 소형건축 현장에서 매일 한 명꼴로 죽는다는 얘기다. 이번 사고도 그 연장선이다.

필자는 ‘건설안전특별법’ 제정 과정에 참여하여 중소형 민간건축의 건설안전을 위해 건축주 직영제 폐지, 안전 감리공영제, 소규모 건설업 면허 신설, 건축사 공사 위탁관리제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거듭 주장하였으나 반영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집값 문제로 골치 아픈 현 정권이 저렴 주택의 단가 상승 요인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국토부와 노동부가 산재 영역 다툼을 하느라 미뤄졌던 이 법이 이번 일을 계기로 처리될 모양이다. 이참에 건축사에게 가설시설 설계 의무만 지우는 식의 미봉책을 넘어 근본적인 해결책을 담아야 한다. 직영이나 면대가 태반인 소형건축 현장에서 실명인 책임자는 건축사밖에 없다. 어차피 그렇다면 책임과 동시에 이에 상당하는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 답이다.

‘설계의도 구현 감리’, ‘법정감리’에 더하여 ‘소형건설 안전감리’제도를 신설하고 그 비용을 발주자에게 지불하도록 해야 한다. 집값 안정도 중요하고 오래된 먹이사슬을 재편하는 것 또한 어렵겠지만 국민의 생명과 건설노동자의 목숨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감리 건축사가 구속되었다. 당사자의 실책이나 불운을 떠나 현재 건설 비용구조 안에서는 누구에게라도 닥칠 일이다. 대한건축사협회가 추진하는 의무가입제의 명분은 직능윤리이고 그중 으뜸은 ‘공공의 안전과 건강과 복리’다. 이를 책임진 후 그 비용을 요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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