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 건축사
김병수 건축사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보고 나서 마음 한켠이 불편해졌다. 얼마 전에는 동료 건축사가 OO 맵이라는 곳에서 인공지능 건축설계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기사 링크를 보내줬다. 지번만 입력하면 자동으로 건폐율, 용적률, 주차대수까지 계산해서 3D 형태로 보여준다니. 우스갯소리로 이제 설계일은 없어질 테니 바다에 가서 보말이나 줍든가, 갈치배를 타야겠다는 이야기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기술의 발전이 마치 목 앞의 칼처럼 다가오는 느낌이다.

그나마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인 인구 절벽은 보수적으로 잡아도 향후 10년 후까지는 건축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을 듯하다. 건축의 주 구매층을 40대 이상으로 보고 현재의 40대 인구를 1로 보았을 때 30대가 0.85, 20대 0.80, 10대 0.56, 0∼9세 0.49 수준이다. 사회가 활력을 잃고 늙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2002년 영화 마이너리티리포트의 주인공이 허공에서 손을 휘저으며 이미지 분석을 하는 걸 보고는 건축설계도 저런 식으로 하면 정말 멋지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네 다섯 명이 매달려 평면 짜고, 입단면 나눠 그리던 시절이다. CG는 당연히 외주였고. 지금은 영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2002년에 비해 프로그램이 월등히 발전했고 그 당시보다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집 나갔던 CG와 모형 제작이 다시 건축사사무소 직원의 일로, 3D 프린터로 쉽게 처리할 수 있게 된 건 덤이고. 이제 BIM 베이스의 프로그램이 좀 더 획기적으로 개발된다면 근 미래에 영화처럼 멋진 모습으로 설계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천성이 긍정적인 것만 보고 살 운명은 못되나 보다. 프로그램이 아주 쉽게 바뀌면, 먼저 설비, 전기, 구조사무실이 없어질 것 같다. 구조만 해도 이미 마이다스를 도입한 건축사사무소가 주변에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프로그램이 더 발전되면 결국 건축주들은 ‘내가 직접 설계한 집’을 대형 3D 프린터로 하루 만에 뚝딱 만들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현대사회는 빠른 정보교환, 대량생산으로 야기된 승자독식의 시대이다. 건축설계가 이 시스템에서 빗겨날 수 있었던 것은 대량생산이 불가능한 태생적 특징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이제 설계조차도 OO 맵처럼 이에 한걸음 다가가 버린 듯하다. 인공지능의 발달 그래프를 보면 2년마다 2배의 성능 향상을 한다는 무어의 법칙을 깨고 2012년 이후 수직에 가까운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곧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특이점이 올 거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기술 발달에 따른 직업의 소멸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이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이에 대응해 나가야 한다. 결국 ‘건축설계에서 AI 가 대체할 최후의 가치는 무엇일까?’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대답이 다르겠지만 나는 창조적 생각과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감성에 건축설계의 미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건축 설계의 엔지니어적 지식과 법적인 정보는 데이터만 있으면 너무나도 쉽게 AI에 먹혀 버릴 테니까. 그런데 이놈의 감성이라는 게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어떻게 습득해 나가야 할지도 묘연한 일이다. ‘이렇게 하면 돼’라는 쉬운 녀석이었으면 AI도 쉽게 습득해 낼 수 있을 테니.

그리고 궁금하다. 이런 급변하는 시기에 여러분들은 살아남기 위해 어떤 칼을 갈고 계시는 걸까. 우울한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마냥 미래가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바야흐로 건축문화 전성시대가 도래하려 한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기반 시설이 들어오고, 사람들이 중공업 제품을 편하게 소비하고, 문화가 발전하고 제일 마지막에 소비하는 게 건축문화이다. TV에선 좋은 건물을 소개하는 프로가 채널마다 있고 사람들은 자기가 살고 싶은 집을 소비하는 게 마냥 꿈만은 아니라는 공감대가 생겨나고 있다. 미래는 위기이자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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