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되고 구체적 해체계획서·체크리스트, 해체공사 매뉴얼도 마련해야”
늘어나는 해체공사 수요, 공기 단축보다 안전 우선이 중요
최저가 경쟁 입찰하는 해체공사, 안전사고 재발 우려 있어

지난 9일 발생한 광주 건물 붕괴사고 현장에서 국과수 등 관계기관의 현장 감식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광주광역시건축사회)
지난 9일 발생한 광주 건물 붕괴사고 현장에서 국과수 등 관계기관의 현장 감식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광주광역시건축사회)

건축물의 노후화와 도심재생, 재개발·재건축 등으로 해체공사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해체공사는 체계적인 안전관리의 중요성은 간과한 채 빠른 시간 내에 완료하는 데 목적을 둬 중대사고가 다수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2012년 서울 역삼동에서는 해체작업 중 슬래브 연쇄 붕괴사고로 지상 3층에서 작업하던 근로자가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바닥에 적치해놓은 철거 잔재물의 하중이 원인이 됐다.

2017년에는 서울 낙원동 한 호텔 해체공사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지상 1층 바닥이 무너져 내리면서 인명피해가 일어났다.

2년 반 뒤에는 서울 잠원동에서 해체공사 중인 건물이 붕괴되면서 도로를 덮쳤다. 그리고 지난 9일 광주광역시에서 유사한 건물 붕괴사고로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처럼 해체공사 사고는 작업 과정에서 조적 벽체 전도에 의한 압사사고, 조적 벽체 철거 중 슬래브 붕괴에 의한 사망사고가 다수를 이루고 있다. 또한 대형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제도 개선도 이뤄져 온 것이 사실이다.
 

광주 학동 건물 붕괴사고 구조 현장(사진=연합뉴스)
광주 학동 건물 붕괴사고 구조 현장(사진=연합뉴스)

◆ 해체작업 간 사고 때마다 제도 보완 했지만 판박이 사고 지속

2012년 역삼동 붕괴 사고 이후 건물주가 사전에 철거계획서를 지자체에 제출하도록 했고, 낙원동 붕괴 사고 이후에는 해체 작업에 대한 전문 감리를 두고, 5층 이상 건물을 철거할 때는 허가제로 전환했다.

이번 광주 사고 이후 서울시는 공사 허가 시에 총괄관리 조직 구성과 현장에 배치되는 건설기술인 명부까지 자치구에 제출하도록 해 원도급자의 책임을 명문화하겠다고 밝혔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14일 오후 서울시청에서 열린 공사장 안전관리 강화 대책 기자설명회에서 “다단계불법하도급과 페이퍼컴퍼니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단속에서 적발된 업체에 대해서는 영업정지, 등록취소 조치를 취하는 것은 물론, 자격증 명의대여 등을 조사해 형사고발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계속해서 “해체허가대상 건축물과 안전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해체신고대상 건축물에 해체공사감리자를 지정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해체공사감리자가 ‘상시’해체공사 감리를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제도 변화가 수시로 이뤄지지만 전문가들은 현장에 즉시 반영되는 실효성 있는 제도로서 부족한 점을 보완해야 판박이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 허가권자인 지자체도 서류만 검토하는 수준에서 관리 감독이 이뤄지고 있는 점도 개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A 건축사는 “해체공사 간 일어나는 사고는 건축물 해체공사 관리에 필요한 제도의 미비, 해체공사 시공과 안전관리 계획에 대한 지침 부족, 해체공사 시공단계의 철저한 관리감독 부재 등이 원인이 되고 있다”면서,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에 더해 건축물관리법, 이제 건설안전특별법 등을 통해 사각지대를 해소하려고 하지만 바꾼 대책들이 현장 상황에 맞는 조치인지에 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하며, 실제 관리감독에 대한 실효성을 높여야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해체 비용과 공기단축에 대한 문제도 있다. B 건축사는 “분양시기를 앞당기기 위한 조합의 공기단축 압력과 해체 비용 절감은 늘 이슈가 되어 왔다”면서 “무리한 공기단축, 비용 절감은 곧 해체공사 간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제도 보완 과정에서 이 문제가 가장 우선적으로 다뤄져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체공사업체 관계자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현재 대부분의 철거공사는 최저가 경쟁 입찰로 진행된다”면서 “금액과 공기에 맞추다 보니 사고 재발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현재 해체공사는 시공 외에 나머지 분야별 담당자들의 경험 부족 등도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역할을 규정한 건축물관리법 시행 이후 1년이 된 상황이라 향후 경험이 축적되면 사고 방지의 긍정적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해체공사 매뉴얼 마련···안전하고 정확한 해체작업 가능

대한건축사협회에서는 광주 건축물 붕괴사고를 계기로 건축물 해체공사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을 수립하고자 전문가 TF 회의를 개최하고 회원들이 제안한 각종 현황 및 문제점을 공유, 개선점에 대해 협의했다.

15일 열린 TF회의에서는 건축물관리법상 비상주와 상주감리업무의 구분 규정이 미흡하고, 감리자의 시정·공사중지 근거 규정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우선 건축물 해체계획서 작성 단계에서 구체적인 해체계획서와 해체공사의 매뉴얼 마련이 요구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매뉴얼의 부재로 이해관계자의 해체 공사 업무와 철거공법 등 일관성 있는 철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통일되고 구체적인 해체계획서와 체크리스트, 해체공사의 매뉴얼을 마련해 안전하고 정확한 해체작업이 이뤄지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감대를 형성했다.

또, 해체공사 허가 신청 단계에서는 심의 내용과 심의절차, 그리고 심의기준이 전무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로 인해 현장 확인이 수반되지 않은 서류목록 위주의 형식적인 절차의 심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회의에서는 해체건축물의 규모, 높이, 밀집도, 공법 등을 상세하게 구분한 해체심의제도 마련을 촉구했다.

건축물 해체공사 감리 지정 단계에서는 상주·비상주 감리업무의 법적 근거 마련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현재 상주 및 비상주감리 업무 규정의 부재로 인해 건축주가 임의로 비상주 계약을 유도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결국 상주, 비상주 배치기준을 해체규모와 난이도에 따라 법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안전사고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감리자의 공사 시정·중지 권한에 대한 강화 요구도 나왔다. 현재 공사 중지 권한은 있지만 이 경우 지자체에 서면으로 보고를 요구하고 있다. 위험하거나 긴박한 순간에서는 무용지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위험요소를 인지하거나 불법행위가 있을 때 감리자가 공사 중지 권한을 적극 행사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석면해체와 건축물관리법을 통해 건축사들이 교육을 받고 있는 것처럼 해체공사에 투입되는 인력들 역시 안전 전문 교육을 이수하도록 의무화 또는 제도화해 임의 시공과 해체계획서와 다른 공사 진행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추가적으로 해체 공사 간 사고발생 시 모든 책임을 감리자에게 집중하는 현상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다. 해체공사 행위의 주체는 시공자임에도 모든 책임이 감리자에게 집중되고 있다. 관련 법령에서도 행위자에 대한 처벌은 전무하고, 발주자와 원도급자에 대한 규제도 없다. 이는 허가권자도 마찬가지이다. 해체 과정에서 영역별 관리주체의 책임소재가 구분되는 기준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회의에 참석한 한 해체 관련 전문가는 “해체작업 간 사고는 부족한 전문성도 원인이 되고 있다”면서 “사고 방지를 위해 실적, 기술자 인력 보유 현황 등 철거업체에 대한 검증 과정과 더불어, 현장인력들에 대한 교육, 해체계획서의 작성과 검토에 대한 전문성 확보, 감리·허가권자의 관리와 감독 강화 등 전반적인 제도 개선을 논의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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