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의 의무가입을 규정한 건축사법 개정안 통과가 목전에 와 있다. 이에 협회는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전문가의 역할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지 숙고하고, 기존 시스템 역시 재구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전히 존재하는 의무가입 반대의 목소리에 대한 포용도 중요하다. 물론 그 내용을 보면 오해와 편견, 이를 기반한 소통 거부 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소통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머리를 맞대고 함께 개선해 나아가야 함이 마땅하다. 다만, 논란이 되는 몇 가지 부분은 의무가입과 전혀 상관없는 근본적인 문제나 병리 현상인 경우도 있다. 그것들은 오히려 의무가입을 통한 통제권과 공익성 강화로 다소나마 문제 해결의 가능성이 열릴 수 있는 문제다.

대표적인 것이 불법 자격 대여나 비자격자들의 건축사 사칭 행위다. 의료계나 법조계 등에선 오래전 사라진 불법 자격(면허)대여 행위가 건축계에선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이는 건축사의 업역적 특수성에 기인하는 부분이 있다. 건축사는 단독이 아닌 건축사보의 도움을 받아 업무를 진행할 수 있도록 법제화가 되어 있다. 현실적으로도 건축사보 없이는 업무 진행은 불가능하다. 이런 업역적 특수성을 악용해서, 소위 사무장이 등장해 건축사를 사칭해서 영업하고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기도 하다.

행정 당국 역시 다양한 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매번 건축정책에 관련된 사항을 일일이 설득해야 하고, 설명해야 한다. 이 같은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건축사들과 관련된 밀접한 정책임에도 아예 건축사들과 논의하지 않고 발표하거나,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더불어 부동산 관련 정책에서는 건축사들과 의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부동산 문제는 단지 공급과 수요의 행정정책이나 경제정책만으로 이뤄져선 안 되는 매우 중대한 국가적 건축 정책임에도 말이다. 이런 상황은 협상 창구의 복잡함에서 비롯된다.

협상과 논의가 복잡해진다는 것은 일일이 모든 단체와 협상과 논의를 통해 매우 느리게 정책화하던가, 아니면 답을 정해 놓고 해당되는 단체와만 이야기해서 진행하는 이를테면 일방적으로 집행하는 것을 말한다.

후자의 결과 의무가입이 임의가입으로 전환된 지난 20여 년간 건축계는 거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90년대 논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20년간 건축계의 정책환경은 거의 퇴보에 가깝게 답보상태였음을 드러난 현상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안전사고는 소규모 건축 현장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고, 도시경관 문제는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다. 오히려 도시경관은 더 악화되는 경향도 없지 않다. 언제까지 이런 문제를 시간만 끌면서 이어갈 것인가?

한자리에 모여서, 법적 테두리 안에서 치열한 논쟁과 논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더구나 대한건축사협회는 건축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선거 절차를 가지고 협회 운영이 이뤄지고 있다. 협회장을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하고 이는 다수의 건축계 의견이 반영된 조직이라는 점을 말한다. 등록건축사의 70% 정도가 참여하는 직접선거는 충분히 그 자체로 의견수렴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의무가입은 결코 특정 건축사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 국가와 사회의 혼란과 오류를 줄이기 위한 기초적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대한의사협회나 대한변호사협회의 의무가입 이유도 마찬가지다. 산업사회에 돌입한 20세기 전후로 전 세계 산업국가들이 순차적으로 국가자격으로 건축사를 제도화 한 이유를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건축사는 문화와 산업, 노동과 기술에 대한 책임자의 지위를 부여받아 역할을 하는 존재다. 그런 만큼 이들의 역할과 관리는 국가적, 공익적 관점이 수반되어야 한다. 공법상의 공공단체적 성격을 내포한 특수법인. 다양한 법적 판결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가치를 다시 한번 주지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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