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영 서울경제신문 기자
노희영 서울경제신문 기자

지난해부터 전 세계를 충격과 공포 속에 빠트리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이제 더 이상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됐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잇따라 백신을 개발하고 각국이 접종에 나섰지만 코로나19가 완전히 사라지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되면서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는 ‘위드 코로나’가 새로운 키워드로 떠올랐을 정도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생활화, 일상이 되어버린 마스크 착용, 재택근무 및 원격수업 활성화 등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많은 것이 바뀐 가운데 ‘공간’에 대한 개념도 변화하고 있다.

특히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보다 다양한 기능을 갖춘 주거 공간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 단순히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일을 하고, 학교 수업을 듣고,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멀티 공간’, ‘만능 하우스’를 원하게 된 것이다. ‘홈루덴스(Home-Ludens)족’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에서 파생돼 밖에서 활동하지 않고 주로 집에서 놀고 즐기는 사람을 뜻한다.

이에 따라 작게는 가구나 가전제품을 교체하는 것에서 시작해 인테리어를 새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더 나아가 이사를 하는 등 공간 교체를 시도하기도 한다. 특히 아랫집 눈치 보지 않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앞마당에서 텃밭을 가꾸며 온 가족이 모여 비비큐 파티를 할 수 있는 단독주택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좁은 땅에서라도 흙을 밟고 꽃과 나무를 가꾸며 ‘자연’을 접하고 싶다는 욕구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단독주택 거래가 크게 증가하는가 하면 아예 자신이 원하는 집을 설계해 지으려는 이들도 늘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2019년 12만 3,762건이었던 전국 단독주택 거래량은 지난해 15만 5,783건으로 25.9%나 뛰었다. 방송사들이 잇따라 선보이고 있는, 집을 찾아주거나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에 단독주택이 최근 많이 등장하는 것도 높아진 관심을 보여준다. 브랜드 건설사들도 단독주택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GS건설·현대건설 등은 직접 브랜드를 만들거나 기존 주택 브랜드와 협업해 ‘단지형 주택’을 조성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오피스나 상업용 부동산에서도 ‘공간의 유연화’ 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실내에서도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녹색공간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잇따르는 중이다.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는 와중에도 협업이나 브레인스토밍을 중시하는 일부 기업들은 직원들이 사무실에 출근하는 대신 동선이 겹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공간 배치에 신경을 쓴다. 자리를 지정하는 전통적 배치에서 탈피해 개인 업무공간과 재충전 공간, 협업 공간 등 기능적 공간 구성을 통해 직원들의 집중력과 아이디어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상업시설들도 방문객 간 동선이 겹치는 것은 줄이면서도 이들의 체류시간을 늘리고 소비를 유도하기 위한 컨셉형 복합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체험공간에는 증강현실(AR), 5GX, ICT 콘텐츠 등의 다양한 신기술을 접목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진행된 각종 건축 관련 공모전에서도 이 같은 고민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다. 지난해 서울시가 진행한 ‘사회적 건축-포스트 코로나'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베트남의 ‘The invisible Facemask(디 인비저블 페이스마스크)’의 경우, 공원을 미로처럼 설계해 사회적 거리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면서 개인 공간을 마련해 접촉을 최소화했다. 또 재택근무 확대로 도심 오피스 건물에 공실이 발생하면 이를 실내 정원으로 만드는 ‘공적 공중 정원’ 등 코로나19 시대에 ‘자연’과 건물의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가 많았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공간 수요자들의 니즈 변화를 누구보다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공간을 창조하는 건축사들에게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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