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들 사이에서 업무범위와 역할에 대한 불만들이 터져 나올 때가 있다. 페이스북이나 개인 블로그 등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업무 과정에서 벌어진 일에 관한 불쾌한 감정의 수위가 상당하다. 그런데 이런 불만 섞인 글을 읽다 보면, 전체 건축사에 대한 오독과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왜냐면 이는 철저히 개인의 ‘입장(立場)’과 시각에서 바라본 불만이기 때문이다.

건축사 간의 분쟁은 같은 건축사임에도 각자가 속해 있는 입장에 따라 각기 다른 해석과 판단을 하면서 발생한다. 대부분 과거에 없던 제도가 만들어지면서 발생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갈등은 좋지 않다. 갈등이 지속되면 공동의 목표가 생겼을 때 조직의 힘을 모으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당장 수많은 건축사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업무절차 중 하나가 바로 사용승인 업무대행이다. 엄밀히 말하면, 사용승인 업무대행은 과거 공무원들이 행하던 일이었으나 인력과 전문성 부족으로 건축사들에게 역할을 위탁한 것이다. 이는 건축 허가 결과에 대한 일종의 평가 개념이다. 논리적으로 건축 허가를 받은 건축물 시공이 허가 내용에 맞게 시공이 되었는지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용승인 업무대행에서 업무를 위탁받은 건축사와 원 설계자 간에 충돌과 불만이 생기고 있다. 사실 사용승인 업무대행 과정이 긴장될 이유도 없고, 갈등의 소지가 있을 이유가 없음에도 말이다. 이는 대부분 건축인허가 내용만 보는 것이 아니라, 법적 해석과 포괄적인 판단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일부 지자체는 업무대행 건축사에게 건축인허가 오류까지 체크하도록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공사가 다 끝나고 사용승인을 하는 과정에서 인허가 외적인 사항에 대해 판단토록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사용승인 업무대행을 수행하는 건축사에 대한 대가가 아예 없거나 인력시장의 인건비 수준도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런 기관의 요구를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주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해서는 안 될 금품 수수까지도 있어 건축사들의 명예에 먹칠을 하기도 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용승인 업무대행 책임의 범위를 제한하고, 적용 항목을 체크리스트로 명문화해서 임의의 판단과 내용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등의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더불어 판단이 아닌 적용항목 체크로 업무내용을 축소해야 한다.

그밖에 설계·감리 분리로 인한 건축행정 프로세스의 업무대행 주체에 대한 논란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건축 인허가 및 행정 절차의 주체가 건물을 소유하고 건축하려는 의뢰인인 건축주라는 점이다. 건축주가 건축행위의 주체이고, 건축사는 설계를 맡아 대행업무를 해주는 전문가다. 설계와 감리가 분리된 만큼, 전체 과정의 대행업무는 계약에 의해 모두 분리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연구원에서도 관련 연구를 진행해 업무 범위 등에 대한 정의를 내린 바 있다.

건축 인허가의 과정 대행은 원 설계자인 건축사가 하는 것이 타당하다. 사용승인은 감리자 분리로 인해서 별도 업무화 해야 한다. 설계의도 구현 계약이 없다면 원 설계자가 어떻게 사용승인을 신청할 수 있겠는가? 또, 최근 공사 업무와 관련해서도 요구가 발생하는데, 착공신고나 착공허가 등 공사와 관련된 업무는 완벽한 시공자, 건설사의 업무이다. 착공은 말 그대로 공사를 시작한다는 의미로, 관련 업무를 설계자가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임에도 일선 현장에서는 대행업무가 건축사 간의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차제에 협회에서 전 회원 건축사들에게 이런 업무 범위와 과정에 대해 명확히 공지하고, 이를 통해서 건축사들끼리 임의 판단에 의한 분란과 갈등이 발생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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