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영 건축사
신주영 건축사

부산의 지형은 산이 많아 땅이 부족하다. 바다 근처 평지와 매립지에는 큰 건물이 들어서고, 산 위의 경사지에는 작은 건물들이 땅이 생긴 대로 임의의 형태로 지어질 수밖에 없다 보니 자연적으로 켜켜이 쌓여진 석축과 같은 풍경을 하고 있다. 공항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올 때면 외국인 관광객이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포인트 역시 이런 산만디 마을인 걸 보면 부산다운 풍경임이 분명하다. 평지가 부족한 탓에 이런 경사지 사이로 아파트가 불쑥 끼어들기 시작했고, 주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풍경을 연출하게 되는데, ‘엄지척’ 이라 이름 지은 협소상가주택 역시 산만디 주택가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남겨진 어색한 자투리땅에서부터 시작됐다.

건축주는 주변 지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자투리땅에 노후화된 2층 주택을 리모델링 하겠노라 찾아왔고 여러 사정상 결국 신축을 결정하면서 설계가 시작되었다. 도시를 개발하면서 세심하게 고민이 이루어지지 못한 탓에 생겨난 엉성해진 틈새 땅은 그간 소위 집장사의 영역으로 여겨졌지만 젊은 건축사에게는 도시의 풍경을 만드는데 개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여담이지만 크고 작은 돌을 사이사이 메꾸는 방식으로 쌓아 올린 부석사의 석축이 여유 있고 풍부해 보였던 것처럼 크고 작은 건물이 도시라는 풍경 속에서 각자 제 몫을 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 건축사의 몫이라 생각한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43제곱미터의 대지. 일조 확보를 위한 높이제한에 따라 3미터씩 세 개 층을 쌓아 올리고 그 위에 절반 이상 사선으로 잘려나간 4층을 얹히다 보니 자연스레 엄지손가락을 든 형태가 만들어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제한선들을 피해 힘겹게 4층까지 올려놓고 나니 겨우 뒷편의 아파트 1층을 마주하는 형편이었다. 아파트를 조성하면서 생긴 대지 뒤편의 10미터 높이의 옹벽은 인접 대지와 적대적으로 대치하는 모습이었고 결국 마주하고 사는 이웃 간에도 묘한 긴장감을 유도하는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파트 1층의 마당 앞으로 빼꼼히 올라온 건물 높이를 두고 제기된 민원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두더지 게임을 연상케 했다.

다행히 당연하게 여기던 경계가 흐려졌고 금세 이웃하게 되었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도시 계획과 관련 법안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충분한 고찰이 중요한 이유는 결국 우리와 마주하고 살게 될 이웃과의 관계의 문제이고 사라져가는 마을의 정취를 유지하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어찌 되었건 43제곱미터의 땅에 20제곱미터 남짓한 작은 건물을 계획하기 위한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계단의 부피를 줄이되 양손으로 짐을 들고 오르내릴 수 있도록 반지름 90센티미터의 원형 돌음계단을 계획했고, 의미 없어 보이던 은행나무 한 그루를 내부로 끌어들일 수 있는 위치에 창을 두어 돌음계단의 지루함을 해소했다. 점심 무렵이면 뒤편 옹벽을 마주하고 있는 1미터 남짓한 틈새 공간으로 쏟아지는 볕을 만끽하기 위해 뒤편으로 큰 창을 두어 꽤 근사한 마당을 만들었고, 건물의 외벽은 주변 건물의 분위기를 따르기 위해 타일로 마감했다.

이렇듯 개발의 바람에서 빗겨 나 남은 자투리땅에 승용차 한 대가 들어서면 꽉 찰 크기의 작은 건물 하나를 완공하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면 고민의 크기와 양이 건물의 크기에 비례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주변에서 작아도 의미 있는 건물을 자주 만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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