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건축사
박상병 건축사

건축사가 하는 일이란 어떤 이의 평생의 꿈을 이루어 주는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빈 대지에 온전한 희망을 세우는 뿌듯함을 경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때에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불안한 마음이기도 했고, 어스름한 새벽에 선잠을 깨우는 걱정이기도 했다. 서른 해를 견디고도 여전히 낯설고 외로운 작업이다.
전국 건축사사무소의 60% 이상이 1인 또는 한 명의 직원을 둔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주변의 사무실 대부분이 실제로 그렇기 때문이다.

건축학과를 졸업한 학생 중 건축사사무소에 취업하는 학생이 절반도 안 된다고 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 외롭고 힘든 길이 될 것이란 생각도 든다.  한편으로 자고 나면 바뀌고 책임만 강요하는 법규를 성토하면서, 또 갈수록 건축 환경이 어려워진다고 투덜거리면서 건축사의 위상이나 전문가가 지녀야 할 자부심을 이야기하는 것도 궁색하다. 몽매한 건축주를 설득하지 못한 안타까움과 시공사의 억지에 휘둘리고 마는 부끄러움, 아직도 멀게만 느껴지는 제도에 대한 무력감에 힘들기도 하다.

몇 년 전, 마음 맞는 몇몇 사람이 모여 사무실을 합쳤다. 선배들의 조언을 따라 협동조합을 만들어 일과 직원을 공유하고, 서로 의지해 공부도 한다. 혼자는 도전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도전도 해서 일부 성과를 내기도 했다. 물론 다양한 의견 제시에 따른 회의로 시간을 허비하고 단체로 움직여 불편한 기색도 있지만, 불안한 발걸음의 동반자가 되어 주고 단잠을 자게 하는 의논 동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렇게 함께 하는 동료와 시간이 건축사가 걸어야 할 새로운 삶의 방식은 아닐까 싶다.

“열 줄의 좋은 시를 다만 기다리고 일생을 보낸다면 한 줄의 좋은 시도 쓰지 못하리라. 다만 하나의 큰 꽃만을 바라고 일생을 바치면 아무런 꽃도 못 가지리라. 최후의 한 송이 극히 크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하여는 그보다 작을지라도 덜 고울지라도 수다(數多)히 꽃을 피우며 일생(一生)을 지내야 한다. 마치 그것이 최후의, 최대의 것인 것 같이 최대의 정열(情熱)을 다하여. 주먹을 펴면 꽃이 한 송이 나오고, 한참 심혈(心血)을 모아 가지고 있다가 또 한 번 펴면 또 한 송이 꽃이 나오고 하는 이러한 기술사(奇術師)와 같이.”

지난 시절 즐겨 보았던 어떤 분의 글 중 한 부분이다. 다른 부분들이 어려운 설명으로 많은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면, 유독 몇 줄의 시(詩)처럼 표현한 이 부분에서 글 전부를 느끼게 했던, 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중얼거리게 되는 구절이다. 아직도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어설프게만 느껴지는 자신에게 그래도 해야 하는, 그리고 또 하게 하는 변명 아닌 변명을 만들어 주는 소중한 글귀이다. 동료들과 함께 보내는 반복과 도전의 시간은 발걸음을 한 발 더 가볍게 하고 불안함을 덜어주는 도움의 손길이 될 것이다.

마치 그것이 최후의, 최대의 것인 것 같이 최대의 정열을 다하여 주먹을 펴면, 꽃이 한 송이 나오고, 한참 심혈을 모아 가지고 있다가 또 한 번 펴면, 또 한 송이 꽃이 나오고 하는 그런 반복의 시간이더라도 말이다. 과정 속에 어떤 꽃이 필까 같이 궁금해하고, 또 새로운 꽃에 함께 즐거워하는 내 최후의 한 송이 극히 크고 아름다운 꽃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필지를 그리며, 주먹을 쥐고 심혈을 모아 또 주먹을 펴게 하는 어깨를 맞댄 동료라 생각해 본다.

이런 시간으로 동료들과 함께, 외롭고 힘든 길이지만 또 한걸음 내디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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