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연 건축사
박주연 건축사

모든 분야를 통틀어 건축만큼 ‘미래’를 자주 찾는 영역이 없다. 기본적으로 건축은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2∼3년 후에 그곳을 점유하게 될 사람을 위한 공간인 만큼 미래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다. 착공 후 레미콘과 PHC파일이 제때 수급될지, 공사비 조달은 원활할지, 준공 후 건물의 수익률은 보장될 것인지 건축관계자들의 사전 검토가 필요하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각종 설계 공모의 지침에는 ‘미래에 대응하는 디자인’을 요구하고 있고 포스트 코로나 세미나에서는 건축이 그 해법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건축을 만들어가는 과정도 미래지향적인가? 세움터가 도입된 지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건축사들은 아직까지 A3의 설계도면 더미와 A4의 각종 서류 작업에 시달리고 있다. 건축사사무소 개업 후 간단한 용도변경 허가업무를 수행할 당시 “본인은 세움터로 도면을 확인하지 않는다. 그러니 도면을 제본 후 나에게 가져다 달라”는 건축직 공무원을 만났었다. 새로운 방식과 흐름에는 누구나 버겁기 마련이지만 공공의 업무를 다루는 사람이 그 시류를 거부할 수 있는가?

최근 들어 건축사 시험을 통해 배출되는 건축사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중 40%가 30대이다. 이들이 만들어가는 건축의 과정은 기존의 것과 당연히 다를 것이며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30대 초에 건축사사무소를 개업하여 올해로 4년 차가 되었다. 사무소 운영과 업무의 방식을 군더더기 없이 더 효율적으로 바꾸기 위해 매년 노력하고 있다. 이쯤에서 돌이켜보면 철야와 주말 출근으로 점철되었던 7년간의 직장생활이 한스러울 지경이다. 이미 적잖은 건축사들이 시도하고 있는 나의 업무수행 방식에 대해 가볍게 공유하려 한다.

우선 사무소 내부의 사정이다. 코로나와 함께 대중화된 비대면 화상회의 프로그램인 ‘zoom’을 업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건축은 가정과의 양립을 이루며 나 자신을 돌보기에 참으로 어려운 직업이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전 국민이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실험하게 된 재택근무는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굳이 대면하지 않고도 zoom을 통해 서로의 스케치와 도면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원격 조정까지 할 수 있다. 이에 우리 사무소는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와 관계없이 유연하게 재택근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덕분에 한 직원은 출퇴근 2시간을 자신을 돌보는 2시간으로 바꾸며 삶이 윤택해졌다고 말한다. 또한, 전 직장에서 수행했던 2년간의 BIM 실시설계 경험을 바탕으로 사무소 내에 BIM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당시 연면적 100,000㎡에 달하는 대규모 리모델링 & 증축 프로젝트를 BIM으로 설계하는 상황이었기에 초기 두 달은 그야말로 혼란의 시기였다. 하지만 이후 반복적이었던 기존 업무들이 대폭 간소화되며 직원들 대부분이 정시 퇴근하기 시작했던 경험이 있다. 장기적으로는 MEP BIM 설계도 필요하겠지만 현재로선 건축과 구조 BIM 설계만으로도 현장과의 괴리를 탁월하게 줄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외부에서도 마찬가지다. 무거운 도면집과 보고자료 대신 태블릿을 들고 다닌다. 미처 출력해오지 못한 자료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 오히려 현장 중심적이다. 최근에는 스마트 감리어플을 활용하여 감리일지를 사무소로 돌아와 작성하지 않고 내용기입, 사진첨부, 현장소장 날인 등을 공사현장에서 끝낸다. 즉각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사소한 업무들은 나를 야근하게 만드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활성화된 유튜브를 통한 설계공모 공개심사방식 역시 공공기관도 미래지향적 건축 과정에 대해 고민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건축은 답이 없다’라는 일종의 명제 아래 우리는 건축사 시험, 설계공모 심사의 폐쇄성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불합격을 해도 왜 떨어졌는지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길이 없었다. 그렇기에 같은 오류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질적 향상을 더디게 이루었다. 하지만 각 지자체마다 선제적으로 시도하는 공개 심사방식을 통해 좋은 건축디자인을 위한 힌트도 얻고 보다 투명해진 심사결과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건축의 미래는 구축될 공간에서만 구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달려오신 건축사님, 당신의 건축 작업과정은 10년 전과 얼마나 달라지셨나요?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