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 라카톤-장 필리프 바살 2021년 프리츠커상 공동수상
학창 시절 첫 만남 후, 1987년 공동사무소 설립
‘기존 건물을 절대 파괴하지 않는다’ 원칙 지키며 반세기 동고동락
“자세히 살피면 이미 있던 것들의 가치 볼 수 있어”
프리츠커 상(pritzke prize) 올해 수상자로 프랑스의 공공건축사 안네 라카톤(Anne Lacaton)과 장 필리프 바살(Jean-Philippe Vassal)이 선정됐다. 안네 라카톤은 프랑스 여성 건축사 최초로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상을 제정한 미국 하얏트 재단 톰 프리츠커 회장은 3월 16일 밤(한국 시각) 두 남녀 건축사를 2021년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공식 발표했다. 재단은 두 건축사가 시민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사회적 건축의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1950년대 중반 태어나 10대 후반 프랑스 보르도 국립건축조경학교(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Architecture et de Paysage de Bordeaux)에서 처음 만난 두 건축사는 그 후 오랜 기간 동안 함께 ‘지속 가능한 공공건축’을 고민하고 실천해 왔다.
‘기존 건물을 절대 파괴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여러 건물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두 사람은 첫 만남 이후 반세기 만에 ‘건축계의 노벨상’을 공동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라카톤은 1984년 보르도 몬태그네 대학교에서 도시 계획 석사 과정을 밟았고, 바살은 도시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서아프리카 니제르로 이주했다.
이 시기 라카톤은 바살을 자주 방문했다. 니제르에서 두 사람은 사막의 풍경 속에서도 자원을 아끼는 아름다움과 겸손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여유로운 삶의 자세에 영향을 받아 되도록 철거하지 않고 건축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그들의 건축 방향을 정립한다.
프리츠커 상 심사위원들은 이번 수상자 발표에서 “두 작가는 생태적 위기 상황을 맞은 지금 시대 상황에 대응해 모더니즘의 유산을 새롭게 갱신하는 건축적 접근법을 정의했을 뿐 아니라 투명하고 강력한 공간감과 재료의 감각을 통해 이를 성취했다”고 밝혔다. 니제르에서의 의기투합이 반세기 후 건축 역사에 남게 될 유산을 만들어 낸 것이다.
두 사람은 1987년 프랑스 파리에 ‘라카톤 앤 바살(Lacaton&Vassal)’ 건축사사무소를 차리고, 유럽과 서아프리카에서 30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라카톤 앤 바살’ 사무소는 ‘기존 건물을 절대 파괴하지 않는다’는 슬로건 아래 투명 합성수지 패널과 온실 기술 등을 이용해 낡은 공공건축물이나 주택 등 거주 공간을 저렴한 비용으로 확장하고 분산된 기능을 합치고 새로운 기능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작업을 벌여 왔다.
낡은 건축물의 기능을 살리기 위해 사이에 새 구조물을 만들거나 기존 건축물을 연결하고 도심 속에서 자연을 만날 수 있는 생태 발코니를 창안하는 등의 작업을 통해 철거하지 않고 공동주택과 문화예술 시설을 훌륭하게 재탄생 시켰다는 평가다.
프랑스 플로라크의 라타피 하우스(Latapie House, 1993년)는 이들의 건축 정신이 잘 녹아든 대표적인 작품이다. 자연광이 집 전체에 닿는 온실형 패널 설치 기술을 적용해 거실과 주방의 실내 영역이 정원과 함께 확장된 새로운 거주 공간을 구현했다.
프랑스 파리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공간 중 하나인 팔레드 도쿄(Palais de Tokyo)의 지하 전시공간을 대폭 확충한 프로젝트도 이들이 함께 만든 결과물이다.
1960년대 초반 지어진 공동주택을 17층의 96가구 규모로 바꾼 ‘브와 르 프레트르 타워’(La Tour Bois le Pretre) 프로젝트에서는 기존 구조를 유지한 채 콘크리트 파사드를 제거하는 등의 방식으로 내부 면적을 늘려 더욱더 쾌적한 주거 환경을 만들어 냈다.
프랑스 캡 페레에 있는 주택도 자연 환경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지어졌다. 두 건축사는 현장에 있던 46그루의 나무를 그대로 둔 채 집을 높은 곳에 지었으며, 집을 가로지르는 줄기를 중심으로 건축했다. 입주자들이 자연과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했다.
라카톤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자세히 살펴보면 이미 있던 것들의 가치를 볼 수 있다”며 “사실 그것은 관찰의 문제다. 새로운 시각을 갖고 주의 깊고 정확하게 접근해서 이미 존재하는 가치를 유지하면서 어떻게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려 한다”고 말한다.
두 건축사의 또 다른 작품들은 프리츠커상 홈페이지(www.pritzkerprize.com)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