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았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LH 내부정보를 이용한 부당한 사익 편취 문제다. 그간 수면 아래 소문으로만 알고 있던 일감 몰아주기 문제도 부각됐다. LH 주관 각종 설계 공모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유는 LH가 막강한 권력을 가진 국내 최강 발주처이기 때문이다.

LH와 같은 공기업이 각종 우월적 지위를 앞세워 행한 일방적 계약 진행은 사실 수십 년간 지속된 일이다. 오히려 점점 더 확대된 공공사업 확대로 인해 LH는 더 공룡화되었고, 이제는 건축사가 대응하기 버거운 위치까지 올라 어쩌면 정부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규모로까지 커지지 않았나 싶다.

LH의 탄생 의미와 가치를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962년 대한주택공사로 시작된 LH는 국민들의 주거 안정을 목표로, 공공 주거에 대한 책임 하에 만들어졌다. 1941년 일본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조선주택영단이 그 뿌리다. LH는 이후 1962년 마포구에 국내 최초의 아파트 단지를 주도하면서, 새로운 주거 문화의 장을 열었다. 1971년 국내 최초로 개봉동에 임대 아파트를 건설하는 등 이후 고도 경제 성장기에 소외되고 문제가 많았던 서민주거 개선과 공급에 앞장섰다. 이런 시작은 미국이나 유럽, 일본이 전후 재건해야 하는 주거 문제에 공공을 내세웠던 점과 유사하다. 일본의 경우 일본주택영단이 1955년 주택공단으로 재편되고 일본 산업화 기간 동안 주거 공급과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다가 그 역할이 소멸되어 1981년 해체되었다. 새로운 역할이 부여되면서 주택도시정비공단에 그 역할이 계승되어 현재는 도시재생기구에 흡수됐다.

이 과정을 보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즉 직접 건축을 발주하던 조직이 아닌 정책과 대안 기구화  됐다는 점과 좀 더 포괄적인 대체 기능으로 역할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반면에 우리나라 주택공사는 오히려 토지공사와 합병되면서 규모가 더욱 커지고 직접 발주, 사업을 수행하는 형태로 역할이 확대되었다. 공공의 역할과 민간의 역할이 구분되고 각자의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하나의 조직 역할이 과다하게 비대해진 셈이다.

조직이 커지면서 수익 중심의 사업으로 재편되고, 법률적으로도 독점적인 지위를 얻으면서 LH는 80년대 이후 국내 신도시 개발과 각종 택지 개발 등을 주도했다. 문제는 독점 체제의 병폐도 계속 뿌리내리며 동시에 되풀이되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정부를 비롯한 각 지자체는 점차 주거 복지 개념까지 도입되는 사회적 흐름에서 LH에 오히려 의존하는 상황이다.

건축사는 어떠한가? LH 중심의 주거 공급과 건축은 대규모 사업으로 진행되며, 도시 경관의 획일화를 주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LH와 연결된 소수의 건축사들을 제외하고는 90%가 넘는 건축사들이 고사 중인 개별 건축시장에서 정글 경쟁을 벌이는 형국이다. LH에 연결된 건축사들 또한 물량에 의한 설계비 할인을 강요당한다. 결국 모두에게 이롭지 않고, 건강하지도 않은 건축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국가는 더 이상 LH라는 공룡 조직에 건축을 의존해선 안 된다. 최소한 지자체 단위로라도 분할하여 시장 변화에 대응하게라도 해야 한다. 국회와 정부는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LH 등 공기업에 대한 지나친 의존 등 시스템 전환에 대한 재검토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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